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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음악

페퍼톤스(Peppertones) - 할머니와 낡은 로케트 (with 이진아)

by 쿨수 2025. 1. 17.

사랑하는 할머니께서 이 땅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무안에서 태어난 강 씨 댁의 소녀는 거의 한평생 논과 밭을 가꾸며 증손자를 볼 때까지 성실히 살아왔다. 그녀는 일 년에 고작 몇 번 찾아뵙는 손지조차 늘 해사한 웃음과 부러질 것 같은 상다리로 맞이하는 사람이었다. 노환으로 몇 년 간 우리 집에 머무시는 동안 고유한 유머를 비롯해 내 안의 여러 결을 물려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요양 시설에서 점점 기력을 잃어버리시는 모습을 보는 건 가슴 아팠지만 덕분에 죽음마저 뛰어넘는 가족의 사랑을 엿봤다. 이젠 그 어떤 아픔도 없는 곳에서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할아버지와 함께 온전히 평안하시길 기원한다.

 

그렇게 조모상을 치르고 조금 지친 몸과 마음으로 출근하는 길엔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냈다. 빙판길 블랙아이스에 속절없이 당했다. 내 잘못이지만 성정이 드센 피해자를 만나 아침부터 크게 혼났다. 같은 날, 일터에서도 예기치 않은 좌절을 또 한 번 겪으며 오랜 심연 속 방어 기제인 '절망이(?)'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문득 든 생각이 애초에 그 어떤 것도 내 것이었던 것이 없다. 운의 탓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모든 건 나의 바람과는 별개로 다 일시적으로 빌려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생각하니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대가 아니라 섣부른 실망이더라. 기회가 될 때마다 최선을 다해 기대하며 열심히 살아야지. 그리고 감히 나의 운명을 스스로 업신여기는 교만도 이젠 최대한 물리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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