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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에티오피아(Ethiopia)_남부 국가 민족 주, SNNPR(Ethiopian Southern Nations, Nationalities, and Peoples' Region)
    기행/해외(아프리카) 2021. 5. 12. 00:46

    2018년 두 번째 출장국은 에티오피아(Ethiopia)였다. 마침 출국일에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한민국 대 독일 경기가 있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후반전을 보다가 출국해야 하는 상황이라 내심 속상했다. 출발 예정시간은 새벽 1시 5분이었는데 연착으로 악명 높은 항공사답게 1시 40분이 지나서 이륙했다. 평소라면 짜증스러웠을 상황 덕분에(!) 2:0 극적인 승리를 모르는 분들과 함께 즐겼다. 연착이 이어졌음에도 누구 하나 미간을 찌푸리지 않고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탑승했다.

    당신들의 잦은 연착에 심심한 감사를 전합니다. :) 흥민이 형 고마워요...*

    해외출장이 잦다 보니 비행기를 타는 것뿐만 아니라 해외에 가는 감흥이 줄었다. 심지어 에티오피아인데 말이다. 정말 교만하다. 에티오피아는 지금 직장에 들어오기 직전 해외 파견을 위한 면접을 앞두고 있었을 정도로 꼭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아프리카 연합(AU, African Union)의 본부를 비롯해 다양한 국제기구가 위치한 아프리카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하고 독특한 문화와 유구한 역사가 매력적인 곳이다. 특히 암하릭이라 부르기도 하는 암하라어와 자체적인 에티오피아 문자, 피델로 독자적인 언어를 계승해오고 있다. 6.25 전쟁 때는 강뉴부대로 유명한 칵뉴 대대를 파병한 혈맹이기도 하다.  

    직항이라뇨... 사랑합니다

    지리적으로는 바다를 접하지 않은 Landlocked country, 일명 내륙국이다. 현재 에리트레아, 지부티, 소말리아, 케냐, 남수단, 수단 총 6개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새로운 꽃'이란 뜻의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는 그 땅의 거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 해발 고도 2,400m에 달하는 높은 지대라 서늘함을 느낄 정도였다. 수도의 규모나 인프라 등을 통해 한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가늠하곤 한다. 난생처음 직항으로 내디딘 아프리카 공항에서 현지 직원들을 만나 현장으로 가는 길에 스쳐지나며 에티오피아가 얼마나 큰 나라인지 느낄 수 있었다.

    Selam!

    피델이 써진 콜라와 그 유명한 에티오피아 커피를 접하며 에티오피아에 왔음을 새삼 실감했다.

    이국적인 이국

    남부 국가 민족 주, 일명 SNNPR(Ethiopian Southern Nations, Nationalities, and Peoples' Region)에 위치한 구라게 존(Gurage Zone)의 웰키테(Welkite)가 이번 출장의 거점이다. 주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에티오피아는 다민족 국가이다. 지역마다 다수인 부족이 달랐는데, SNNPR은 상대적으로 더 여러 민족이 더불어 사는 곳 중 하나라 국지적인 내전도 진행 중이었다. 동시에 나의 출장기에서 드물게 수도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라 숙소 예조카 호텔(Yejoka Hotel)의 편의 시설과 주변 도로는 생각보다 좋았다. 다가올 비극과는 별개로...*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도착한 직후부터 비가 많이 와 어려움이 많았지만 늘 그렇듯 거점을 기점으로 짧은 시간 동안 말도 안 되게 많은 곳들을 쑤시고 다녔다. Terhogne, Gochira, Gomshe 등 생소했던 많은 지명이 금세 익숙해져 갔다. 

    나에게로 와 꽃이 된 많은 마을들, 이름들...*

    제한적인 시간과 많은 이들의 너른 마음 덕분에 고된 것에 비해 훨씬 값진 것들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묻고 들으며 삶의 보편성과 모든 존재의 특별함에 대해 새겼다.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이번 출장지는 내가 겪어온 곳 중 상대적으로 완만하고 풍요로운 땅이었다. 푸르름이 가득했고 건강해 보이는 가축이 자주 눈에 띄었다. 역설적이지만 땅의 축복이 꼭 개별적인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선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때때로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서 가장 못 사는 집, 어려운 집을 찾는 내가 모순적으로 느껴지곤 했다. 직전에 다녀온 곳들이 워낙 열악했기에 상대적으로 나은 곳이라 느껴지는 건방진 회의가 또 다른 죄책감을 더했다. 예전에 비해 아주 조금 더 안다는 이유로 힘과 열정이 덜 생길 때면 마음이 한껏 무거워졌다. 아직 경험이 일천한 내가 병원의 CEO나 마을 원로들을 만나 이것저것 청할 때면 스스로 뻔뻔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다만 그들의 지혜가 나를 수용했을 뿐이라는 걸 안다. 근심이 다리를 풀리게 할 때면 어머니가 전해준 조언처럼 이곳에 내가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많은 순간 마음을 다잡고 주어지는 잠시간의 여유에는 현지 자료를 숙지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도움이 필요한 동시에 매체에 적합한 스토리를 지닌 사례를 찾으며 최선을 다해 최선을 고민했다.

    목축지라 낮에는 가축이, 해가 지면 하이에나가 돌아다녔다. 하이에나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겠으나 함께 이야기를 나눈 이들의 밤이 걱정됐다.

    사례가정 및 아동을 만나고 찾기 위해 매일 같이 병원에 출입할 땐 약간 사스마와리를 도는 기자 같기도 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이룬 기자의 꿈...*

    때론 고민 중에 지난 일로 당위성에 힘을 얻곤 한다. 출장 중에 현지 스태프가 보여준 광주광역시의 정부기관 및 지역지, 전라남도 정부기관, 충청남도 지역지 등의 기부로 지어진 시설과 교육 자재가 생각많고 어린 나를 격려해 주었다.

    모두를 위한 많은 이들의 수고에 티끌만한 나

    주제넘은 고민에 대한 벌이었을까?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시작된 일명 베드버그(Bedberg), 빈대와 벼룩(Flea)과의 전쟁은 나의 참패로 끝났다. 맛집이라고 소문이 났는지 이불도 바꿔보고 죽이고 또 죽여도 오히려 더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나중엔 정말 침대가 무서워 쉴 때도 꼿꼿이 앉아 있었다. 하루는 두려움에 이불을 안 덮고 자다 추워서 깼다...^^ 나중에는 호텔에 거의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진짜 별의별 방법을 다 써도 잡히질 않아서 결국 방을 바꿨다. 방을 바꾸는 과정도 정말 쉽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 전체에 빈대와 벼룩이 백 곳 넘는 흠집을 내니 몸에서 경보를 울려 생전 처음으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베트남에서 하루 만에 모기에 100번 넘게 물렸을 때와 필리핀에서 뎅기열 걸렸을 때 핀 열꽃과는 또 다른 극한의 고통이었다. 간지러움으로 사람이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밤 간지러워 긁다 깨다를 반복하며 1주일 넘게 제대로 잔 날이 거의 없다. 새벽부터 밤까지 바쁜 일과를 보내 하루 종일 간지러움을 참다 보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발진이 나중에는 얼굴까지 뒤덮었다. 급한 대로 알레르기 약을 먹고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보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방을 바꾼 뒤에는 안 물렸고 나 빼고 다른 일행들은 물리지 않은 걸로 봐서 내가 처음에 묵었던 방이 그들의 소굴이었던 것 같다.

    극동 아시아에서 온 희생양입니다...*

    현지에서는 그런 벌레를 빔비(Bimbi)라고 불렀다. 업무 중에 내 손과 얼굴을 본 어느 아저씨가 이건 빔비라며 모기장을 가져다주셔 울컥하기도 했다. 모기장은 받지 않았지만 그 마음만은 오롯이 전해졌다. 너무 따뜻한 위로에 나아갈 힘을 얻었다.

    툭 치면 팡 터질 정도로 과식했던 빔비들... 꼭 그렇게 과식했어야만 했냐... 이 자식들아...

    출장이 이어져도 비가 쏟아지는 날이 잦았다. 기후마저 이상한 이 세상에서 날씨가 내 맘 같지 않은 게 뭐 대수인가 싶으면서도 짧은 일정에 비로 생기는 여러 제약은 평소보다 큰 부담이다.

    차가 진흙탕에 빠지는 일은 한국에선 드문 일이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일찍이 익숙해졌다. 나중에는 미끄러운 흙에도 적응이 되어 요령껏 전력으로 뛰어다니며 현장을 조율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밀도 높은 시간 속에 월드컵은 이어졌다. 틈이 나면 현지 사람들 사이에 슬쩍 앉아 지구촌의 축제를 함께 즐겼다. 아르헨티나와 프랑스, 포르투갈과 우루과이의 경기를 보고 두 축신의 동반 탈락을 바라보며 한 시대가 저무는듯한 씁쓸함을 느꼈다.

    독특한 식문화는 출장 속 행복 중 하나였다. 인제라(Injera)는 시큼한 맛이 강해 약간 거부감이 들었지만 나름의 풍미가 느껴져 먹을만했다. 여러 가지 음식과 소스를 반찬처럼 곁들여 먹었는데 개인적으로 양고기 수프랑 먹는 게 제일 좋았다. 누린 내도 안 나고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현지식을 잘 먹는 게 나음과 못함의 기준은 아니지만 같이 온 한국 일행 중에 유일하게 에티오피아 현지식을 즐겨먹는 건 나름의 자부심이었다. 무엇보다 현지 사람들이 너무 좋아했다.

    형들이 웃으면 나도 좋아

    에티오피아 커피는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정말 맛있었고, 정말 저렴했다. 향과 맛이 그렇게 훌륭한 커피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아프리카 다른 나라에서도 이 정도로 맛있는 커피는 못 먹어본 거 같다. 산미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맛있는 산미'를 깨쳤다. 거리의 바리스타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절대로 쉽지 않은 조리법으로 수준급의 커피를 탁탁 내어주었다. 고원지대에서 이어지는 비로 몸에 한기가 돌 때쯤 길가에서 동료들과 함께 마시던 커피의 온기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개별적인 성향을 집단으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으나 에티오피아는 사람들이 사납기로 유명하다. 도시에 가깝고 이전에 갔던 곳에 비해 발전한 지역이라 그런지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통제가 어려워 버거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잠시 머무르는 이방인이 그들의 터전을 통제하려는 것 자체가 역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 사무소 직원인 피체, 데제니, 에들루, 아다무, 테스퐈이와 호텔 직원 싸미 등 동료들과 현지인들의 너른 마음 덕에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한정된 자원으로 그 이상의 효과를 내야 하는 만큼 본의 아니에 선물 같은 이들에게 빡센 시간을 선물하곤 한다. 늘 그 미안함을 표현하지만 그럼에도 편치 않은 마음은 잘 가시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런 얘기를 했더니 오히려 현지 직원들이 입 모아 '괜찮다. 너는 한국에서 여기까지 네가 아닌 우리를 위해 왔는데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라고 말해주었다. 많이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 말이 심금을 얼마나 울렸는지 모른다. 항상 힘이 되는 한국 동역자들도 이 먼 곳에서 나의 대리 진급을 커스터드 과자로 축하해 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아마세그날로...! 

    덕분에...!

    때로 머니, 머니를 외치며 모이는 아이들에 감히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보다 많은 순간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봤다. 아이들은 정말로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모두 어른의 몫이다. 나는 사람의 보편적인 선함을 특별히 아이들을 통해 확신한다. 상대적으로 작은 어려움에도 지쳐 버거울 때면 아이들의 삶을 듣고 겪으며 크나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11살 아이가 지고 있던 삶의 무게와 책임감을 육성으로 들으며 한없이 부끄러워 눈시울을 붉히던 29살 박수영을 간직해본다.

    얘들아 꼭 건강하게 잘 자라 행복한 어른이 되길 바라

    방문한 가정 중 어머니는 시각장애, 누나는 소아마비를 지녔지만 그럼에도 어린 동생들과 함께 당차게 살아가던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과 형제들도 기억에 남지만 늘 집에서 매여있다가 잠시 외출한 누나의 환한 미소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에 본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의 크리스티나의 세계(Christina's World)라는 작품을 떠올리게 한 소녀의 아름다운 미소에 오래오래 목이 메었다.

    사전 조사한 현지 자료로 스케치를 해두고 현장에서 구체적인 윤곽을 잡아가는 일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동시에 많은 사공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한 방향으로 노를 젓게 하는 일이고 때로 잘못된 판단을 하더라도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용기를 키우는 업이기도 하다. 많은 고민과 어려움도 있지만 결국엔 많은 곳과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짧은 출장은 돌이켜보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모든 것이 슬플 때조차 나름의 길이 있었다.

    PS.1 출장 중에 에티오피아 총리와 에리트레아 대통령이 만나 괜히 묘한 기분으로 그들에게 보다 밝은 미래가 다가오길 희망했다.

    PS.2 마지막에 환전은 되지 않았고 비행기는 또다시 연착되었다. 끝까지 쉽지 않았지만 그 힘듦 이상으로 정이 많이 들었던 에티오피아...*

    왜 사냐건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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