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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우간다(Uganda)_굴루(Gulu), 파데르(Pader)
    기행/해외(아프리카) 2021. 6. 14. 21:14

    밤 12시 비행기를 타고 두바이를 경유해 총 20시간 정도 걸려 엔테베 공항에 도착했다. 작년 12월에 이어 근 1년 만에 다시 우간다를 찾았다. 도착 비자 붙이고 밖으로 나왔는데 아무도 없다. 보통 현지 사무소 직원 혹은 드라이버들이 기다리고 계시다가 픽업해 준다. 당장 나는 현지 화폐도 유심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당황스러웠다. 가져온 공용 짐이 신경 쓰이는 가운데 급한 대로 행인의 폰을 빌려 현지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날 까맣게 잊었구려...* 공항에서 1시간 정도 기다린 뒤에야 사무소에서 급하게 불러준 택시가 왔다.

    나는 혼자였다...*

    공항이 위치한 엔테베(Entebbe)에서 출발해 수도인 캄팔라(Kampala)에 다다르니 길이 많이 막힌다.

    결국 5시가 다 되어서야 현지 사무소에 도착했다. 이 불행이 선발인 나에게 닥쳐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덕분에 다음 일행들의 일정과 이번 출장의 여러 사항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생각보다 누락된 부분이 은근 있어 신신당부했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 봐요... 그래도 고마워요...*

    얼추 마무리를 하고 출발하려는데 사무소의 실수로 따로 배정된 차가 없었다. 다행히 다른 용무로 수도에 왔다가 가야 할 지역을 지나는 차가 있어 얻어 탔다. 지친 몸에 스트레스가 쌓인 심술보와는 별개로 도시는 유유자적히 아름답다.

    일정이 지연되며 트래픽 잼에 제대로 걸려 캄팔라에서만 1시간 30분 넘게 갇혀 있었다. 

    90년대 명절의 고속도로가 이랬을까?

    세상이 깜깜해지고도 한참을 달렸다. 한국에서 출국하고 거의 30시간이 지나서야 목적지인 굴루(Gulu)에 도착했다. 밤 12시가 지난 시간, 마침내 숙소에 짐을 풀고 씻고 자려는데 정전이 됐다...* 침대 위에선 수상한 벌레를 발견했다. 불안하고 꿉꿉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간밤에 번개와 천둥이 살벌하게 쳐서 잠을 설칠 정도였다. 결국 새벽에 완전히 깼다. 아침이 되어 나오니 숙소 보마 호텔 (Bomah hotel)의 시설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또 다른 여정...* 이번 출장은 여러모로 2배였다. 보통 한 출장에 한 개의 필르밍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두 개의 필르밍 프로젝트를 한 번에 추진하게 됐다. 덕분에 긴 선발대의 일정도 평소보다 1주일 정도 더 길다. 하지만 해내야 하는 일을 생각하면 오히려 짧은 일정이다. 출장 지역도 굴루와 파데르, 2개의 구에 걸쳐 진행됐다. 숙소는 굴루에 위치해 있어 파데르(Pader)에 가는 날이면 편도로 2~3시간을 이동해야 했다. 우리가 찾은 지역은 우간다 내전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지역 중 하나다. 전쟁고아들도 많았고 노딩병(노딩 신드롬)이라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을 앓는 아이들도 있었다. 

    굴루 사무실을 시작으로 현지 직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차 타고 현장 속으로...*

    늘 그렇듯 많은 가정을 오갔다. 문턱을 넘기 전과 후의 집은 때로 참 다르게 다가온다. 벽 밖에도 안에도 어떤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번 출장의 길이도, 오가던 길도 사실 겪어본 가장 길었던 무언가에 미치진 못했다. 그럼에도 참으로 길게 느껴지던 순간이 많았다. 실제 길이와 별개로 책임과 부담이 스스로 옭아매고 지치게 했다. 때로 꿈에서도 사례를 찾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항상 한 걸음 내딛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뚜벅뚜벅 살다 보면 어딘가로 길은 통했다. 늘 그랬다.

    길은 늘 많은 풍경을 선물한다. 동적이고 정적인 많은 순간들을 마음에 담고 또 담았다.

    병원, 거리, 시장, 정류장, 학교... 정말 많은 곳에서 그보다 많은 사람을 만났다. 다양한 눈빛을 마주하며 때로 경계심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그보다 많은 순간 허물없는 눈인사를 나누었다. 어딜 가나 그 지역의 특수성보다는 삶의 보편성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불특정한 지역을 다니며 우연히 아마도 나의 선배들이 이전에 함께했을 프로젝트의 결과들을 마주했다. 아주 고독하다고 느낄 때면 사실 앞서 걸어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언젠가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 누군가에게 나의 발자국이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는 때로 아주 작은 고민에도 최선을 다해 애태우고 또다시 최선을 다짐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굴루와 파데르의 사람들은 아주 큰 삶의 짐도 의연하게 견뎌내고 있었다. 들판을 가득 채운 목화와 탑을 이루는 벽돌들 그리고 거대한 키데레 언덕 옆 작은 언덕을 이루던 수많은 석재들... 이 모든 게 나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닿았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목표했던 것들을 조금씩 이루며 부끄럽지 않은 끝에 이르기 위해 노력했다. 

    굴루는 내가 머물렀던 지역 중 상당히 번화한 편이었다. 특히 숙소가 위치한 곳은 대로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목이었다. 덕분에 일정 중 미안한 마음으로 많은 것들을 누리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출퇴근하면서 본 도시에 가까운 거리의 생생한 색감은 참 아름다웠다.

    Vivid

    업무 덕에 몇 번 오간 중앙시장, 굴루 메인 마켓(Gulu Main Market)에서는 많은 이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숙소에서는 무려 EPL을 시청할 수 있었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업무가 이어졌지만 우연한 틈이 맞아 흥민이 형을 라이브로 응원할 수 있었다.

    숙소에 헬스장도 있었다. 찌든 피로로 거의 이용하진 못했지만 존재가 신기했다.

    굴루 시내에는 몇 개의 카페가 있었다. 긴 일정 덕에 한 주에 한 군데 정도는 가볼 여력이 생겼다. 붉은 외벽이 인상적인 더 커피 헛(THE COFFE HUT)은 굴루에서 처음으로 아이스커피를 먹게 해준 곳이다. 미지근함 속 얼음이 남아있던 커피는 정말 감동이었다.

    美味

    아이언 동키(The Iron Donkey)는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였다. 무려 에스프레소 셰이크가 있었는데 맛도 있었다!

    美味

    마지막으로 오 카페(O CAFE)는 보다 다양한 메뉴가 있는 곳이었다. 아프리카 출장지 중에 가장 지내기 좋은 도시였던 것 같다...* 아마 출장지에선 처음인 것 같은데 카페에 갔다가 한국인을 만났다. 교육 관련 기관에서 모니터링을 위해 오셨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국내 NGO인 HoE에서 굴루 내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美味

    보통 출장 중엔 휴일이 없는데 이번엔 두 프로젝트를 교체하는 시점에 약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덕분에 주일에 현지 교회인 와토토 교회(Watoto Church Gulu)에 가봤다. 예배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영상이 엄청 고퀄리티였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짧은 쉼표를 더하거나 빼고도 일정은 빼곡했다. 문화가 다른 곳에서 함께 일을 한다는 건 필연적으로 각자의 당연함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번에도 시간개념, 소통 방법 등에 많은 다름을 느끼고 배웠다. 때로 그로 인해 서로를 지치게 했지만 결국은 우리를 하나로 묶고 끝까지 해낼 수 있게 해준 매개 중 하나였다. 맡은 역할을 핑계로 많은 순간 몹시 외람된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주제넘는 기회를 준 조직 덕에 몸에 좋은 쓴 고민과 고생을 많이 할 수 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수많은 이들과 선한 목적을 위해 함께할 수 있어 감사했다. 함께한 한국 일행들도 여러모로 나에게 많은 가르침과 채움을 줬다.

    특히 현지 협력 NGO의 스태프들이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던 안젤라와 자넷은 많은 순간 일을 하는 방법뿐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가르쳐 줬다. 현지에서 통용되는 언어인 아촐리(Acholi/Acoli)어 스승이기도 했다. 덕분에 무로(흰 사람)는 수도 없이 와포요(Wapwoyo)라고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와포요 레폰

    일정을 다 마치고는 잊을 수 없는 작은 선물과 편지를 전해줘 끝까지 감동이었던 두 사람. 다시 한번 그 고마움을 전한다.

    Wapwoyo matek!

    서른을 앞두고 다녀온 출장이었다. 어쩌면 이 시절이 막막하고 버거운 만큼 더 그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로라 부르며 해맑게 손을 잡던 아이와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눈망울과 웃음을 보며 그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어느덧 현지에 동화되어 넉살 좋게 다니는 나를 보고 함께한 일행은 나에게 '굴루박'이란 별명을 지어주었다. 사실 지역 내 많은 아픔을 갖고 있지만 그 어느 곳보다 많은 웃음을 주고받은 곳이 바로 굴루였다. 함께했던 아촐리 모든 이들이 그 아름다운 웃음을 더 많이 누리며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무카마(God) 아코웨(give you) 오모키사(Ble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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