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생활/전시

국립중앙박물관_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by 쿨수 2022. 7. 18.
반응형

산포(?) 인근에서 상경한 김에 국립중앙박물관까지 다녀왔다. 

주목적은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이었지만 궁금했던 '사유의 방'도 못지않게 기대됐다. 작년에 왔을 땐 공사 중이라 미처 못 봤는데 주변에서 호평이 왕왕 들려왔다.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된 공간은 입구부터 뛰어난 심미성과 묵직한 메시지를 자아냈다.

마침내 마주한 두 불상은 번뇌와 해탈이 모두 엿보이는 듯 참 오묘하게 아름다웠다. 어쩌면 삶도 그런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만큼 아름다운...* 고생 속에 편안의 경지에 이른 듯한 찰나를 포착한 작품이 영겁의 시간을 가늠하게 했다.

이어 찾은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은 여유롭게 보고 싶어 토요일 마지막 시간인 8시로 예약했는데 7시 55분쯤 입장할 수 있었다. 작년에 MMCA, 국립중앙박물관, 이중섭미술관의 여러 이건희 특별전에 기웃거린 덕에 반가운 작품이 많았다. 물론 새로 보는 작품도 많았다.

이번 전시는 이름처럼  한 수집가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기획이었다. 총 2개의 실로 구성되어있는데 먼저 만날 수 있는 1실의 주제는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이다. 들어서자마자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석인상이 반긴다.

임옥상 화백의 <김씨연대기 Ⅱ>는 왠지 흙과 뿌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장욱진 선생님의 <가족>과 권진규 작가의 <모자상>은 자연스레 나의 가족과 겨레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단순히 뛰어난 작품뿐 아니라 전시 공간도 그에 걸맞게 하나의 작품에 이르려는 듯한 고민과 노력이 곳곳에 느껴졌다. 이전에 경험한 이건희 특별전과 우열을 가리는 건 아니지만 같은 작품이어도 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담고자 하신 것 같아 더 좋았다.

정약용 선생님, 박수근 선생님, 이중섭 선생님, 김환기 선생님 등 수많은 스승들을 한곳에서 만나 뵐 수 있어 감개가 무량했다.

이번 전시의 백미 중 하나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이었다. 1실에서 2실로 이동하는 공간에 사실상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더 눈에 띄었다.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는 화가라 한국에서 이렇게 귀한 작품을 가깝게 볼 수 있어 감사했다. 빛의 사냥꾼이 말년에 심안으로 펼쳐낸 빛나는 그의 정원이 여전히 눈부셨다.

몇몇 작품을 손으로 즐길 수 있는 '촉각 체험 코너'도 준비되어 있었다. 여러 감각으로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어떻게 보면 접근권의 차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세심한 공간이 더 반가웠다. 부디 다양한 방법으로 보다 많은 이들이 예술의 풍요를 누릴 수 있길 바란다. 

어느덧 2실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에 들어섰다.

처음 봤을 때 투영된 이중섭 화백의 혼이 느껴져 감동을 주었던 <황소>를 다시 마주했다. 괜히 반갑고 아직도 벅차다.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여러 모습을 담은 여러 그림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이번 전시는 기간에 따라 인왕제색도, 추성부도, 불국설경, 화접도 등 몇몇 작품이 교체된다. 나는 인왕제색도와 추성부도는 이전에 봤기에 <불국설경>을 볼 수 있는 기간에 맞추어 찾았다. 7년 만에 눈이 내린 불국사의 설경이 오롯이 담긴 작품이 정말 그야말로 고즈넉해 취향을 저격했다. 

오지호 화백의 <화물선>을 비롯해 유영국 화백의 <무제>, 천경자 화백의 <만선> 등 그냥 너무 좋은 작품들이 범람했다. 지난겨울 친구들과 제주도에서 함께 봤던 이중섭 화백의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서울에서 보니 기분이 묘하다.

이 외에도 소재에 따라, 주제에 따라 여러 관점으로 소개한 많은 작품을 만났다.

최종태 작가의 <생각하는 여인>은 사유의 방에서 마주한 반가사유상을 떠올리게 했다. 해탈보단 고뇌에 가까운 표정이 좀 더 인간적이었다.

이곳에서도 역시 이건희 회장의 불심과 취향을 느낄 수 있었다.

단 하나도 같지 않은 수많은 작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결국 그 모든 건 삶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거의 출구에 위치한 백남준 작가의 <브람스>까지 보고 나니 어느새 오늘 전시 종료 10분 전이다. 직감적으로 빠르게 역행했다.

조금이라도 한가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싶어 일부러 마지막 시간대로 예매했는데, 역시나 마감 십여 분을 남겼을 때는 꽤나 한적했다.

불국설경을 처음 볼 땐 사람이 꽤 많아 큰 그림을 한눈에 볼 수 없었다. 아무도 없을 때 멀찍이서 보니 정말 불국사의 원경이 절경으로 느껴져 신기했다.

거꾸로 돌아가게 한 가장 큰 목적이었던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에 도착했을 땐 한 분이 먼저 와 계셨고 다른 분이 내 뒤에 에 오셨다. 소수로 작가와 밀접하게 소통하는 느낌이라 특별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셋이 나란히 서서 천천히 작품을 감상했다. 덕분에 모네의 연못가를 함께 거니는 듯한 감동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느꼈다).

이번 전시도 큰 감명과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여러모로 많이 공을 들인 게 느껴져 더 감사하게 누렸던 것 같다. 이런 초대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사유의 방부터 어느 수집가의 초대까지 이어진 인간적인 고뇌와 예술로의 승화를 간직하며 나도 언젠가 티끌만큼이라도 그 거대한 흐름에 일조하고 싶다는 건방진 마음을 품어본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