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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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 나의 봄은문화생활/음악 2022. 5. 16. 21:14
이십 대에는 속내를 말로 하는 게 지금보다 어려웠다. 아주 가까운 몇몇 이들은 얼핏 내비친 마음을 먼저 알아채기도 했지만 확실치 않은 것들을 언어로 옮기고, 남기는 게 조심스러웠다. 타인에게 받는 위로는 일시적인 힘은 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고 건방진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다만 속이 너무 시끄러울 때면 정작 일상에선 침묵하면서 노래에 빗대 내 마음을 표현한 글들을 이렇게 불특정 다수에게 터놓곤 했다. 나이를 먹으며 뜸해지기도 했는데 올해는 웬일인지 참 많은 넋두리를 내뱉었다. 솔직히 혼자만의 시간을 진심으로 즐긴다. 홀로 여기저기 자주 다니고 외따로 산책을 하며 숨을 고르곤 한다. 예전에 책 을 읽다가 ‘Solitudine Solatium(Solace in solitude)’이라는 단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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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톤스(Peppertones) - long way문화생활/음악 2022. 5. 9. 13:28
때로 어떤 여행은 떠나고 싶은 바람보다 떠나야 할 것 같은 느낌으로 시작된다. 그런 마음으로 지난주에 고생길이 훤한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 비록 불의의 사고로 여정을 이르게 접어야 했지만 그 시간이 내게 남긴 감동이 값지다. 이미 알고 있던 진리를 되새긴 덕에 한동안 나를 애태우던 여러 고민이 삶의 자양분으로 환원됐다. 깨달음은 일시적일 테고 외상과 내상이 주는 통증은 당분간 나를 괴롭히겠지만 오랫동안 동행한 신조를 홀로 읊어본다. 센탄냥 랴오까이 쑤쑤더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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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정 - 그대만을 위한 사랑문화생활/음악 2022. 4. 27. 20:44
타인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조연을 맡다 보면 내 인생에서조차 주연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아진다. 마음대로 되는 게 딱히 없는 시기를 보내며 조금은 특별할 줄 알았던 나의 생애가 얼마나 초라하고 별 볼 일 없는지 깨달았다. 자기 비하나 연민보다는 서글픈 메타 인지에 가깝달까. 한동안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럴 수 있지'보다 '어쩔 수 없지'가 입에 붙어 간다. 얼마 전엔 우연히 '겹벚꽃'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다른 벚나무보다 조금 늦게 피는 꽃이 가진 꽃말의 뜻풀이 중 하나는 "수줍음이 많아 이성의 인기는 그다지 끌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속 깊숙한 곳에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있군요"라고 한다...* 누군가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면 상대방의 호의조차 상실하게 된다는 통계적인 일반화가 강해져 솔직하기는 점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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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dia - 어른문화생활/음악 2022. 4. 10. 09:48
블로그에서 사용하는 별명인 '쿨수'는 쿨한 척하는 수영이라는 뜻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가 사용한 표현이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나를 꿰뚫어 이해하는 말이라 오래토록 쓰고 있다. 특별히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보다 타인을 먼저 헤아리는 게 그냥 습관이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은 미뤄두고 괜찮은 척할 때가 많다. 요즈음 지극히 개인적인 아킬레스건을 거듭 건드려 아물다 덧난 우울감을 견디고 있다. 한 주 동안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연달아 많이 만났음에도 정작 마음속 어려움은 입 밖에 내지 않고 그저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왔다. 감정 기복이 심한 편도 아니고 나름의 회복탄력성도 갖췄지만 수많은 사람 속에 나조차 내 괜찮지 않음을 돌보지 않았다는 게 뒤늦게 적막하다. 괜히 허무한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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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너마저 - 잔인한 사월문화생활/음악 2022. 4. 1. 19:59
만우절 거짓말처럼 또다시 사월의 첫날이 왔다.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줄에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가 등장한다. 대학시절 은사님 중 한 분은 매년 이때가 되면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를 본다고 했었다. 많은 순간을 노래로 기억하는 나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잔인한 사월'을 떠올리곤 한다. 많은 꽃이 피고 지는 고운 시기는 어쩌다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어쩌면 아름다움은 슬픔을 반드시 수반하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많은 비극이 있던 달이 시작했다. 사실 스스로 지은 죄는 없는 넷째 달의 결백함을 기리며, 2022년 4월을 맞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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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경 - 내게 오는 길문화생활/음악 2022. 3. 28. 18:35
어떤 노래는 아주 오랜 세월 마음을 대변하는 동시에 삶의 지표가 된다. 성시경 님의 데뷔곡이기도 한 '내게 오는 길'은 내게 그런 노래다. 특히 군 복무를 할 때 밤과 새벽 사이 초소 근무를 서다 선임병이 잠들면 속으로 수도 없이 이 노래를 틀곤 했다. 그러면 눈으로는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당직사관이나 다음 근무자를 찾고, 뒤에 있는 선임을 신경 쓰면서도 자연스레 어떤 순간들이 뮤직비디오로 포개졌다. 제대하고 꼭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내게 오는 길도 네게 가는 길도 아득히 멀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오래된 애창곡을 한결같이 열창하는 목소리가 더 값지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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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경 - 방랑자문화생활/음악 2022. 3. 25. 17:02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새삼스럽게 소중함을 느끼는 것들이 많아진다. 이를테면 일터에서 감내할 만큼의 어려움이 얼마나 드물게 찾아오는지, 훌쩍 호수 산책을 다녀올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큰 건지 알게 된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겨루던 싱거운 농담, 어머니가 차려 주신 따뜻한 밥상, 속내와는 다른 형제간의 무미건조한 손인사 그리고 늙은 반려견의 체온을 언젠가 분명히, 한없이 그리워할 걸 뼛속 깊이 깨닫는다. 하루에 감사하며 최대한 누리겠다는 마음을 다져보지만 일상 앞에 대부분의 결심은 허물어진다. 내 삶에서조차 겉도는 것 같아도 돌고 돌아온 이곳이 바로 제자리이며, 내겐 그 누구의 삶보다도 값진 나의 인생이다. 요즈음 귀가 닳도록 듣는 노래와 함께 주어진 날 동안의 걸음과 이어지는 방랑에 최선을 다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