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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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예린 - 산책문화생활/음악 2021. 9. 23. 21:09
요즈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행위 중 하나는 해가 저물고 밤이 깊어지는 시간 고요한 호숫가를 산책하는 일이다. 호수는 날씨나 그날의 기분에 따라 매번 다른 얼굴이다. 두 다리로 수면에 비친 마음의 행간을 읽어내다 보면 생각지 못한 것들을 마주하곤 한다. 최근에 새로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뒤늦게 자각한 우유부단함이다. 지난 일은 되돌릴 수 없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예측이 어렵다. 당장 하루하루도 벅차기에 이미 어쩔 수 없는 후회나 고독은 적당히 곱씹고 다시 걸음을 옮기곤 한다. 더 나은 지금의 나, 언젠가의 우리를 기대하며 그렇게 산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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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정 -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문화생활/음악 2021. 7. 27. 22:42
요 몇 년 사이 스스로 부유식물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어디에도 뿌리 맺지 못하고 그저 둥둥 떠다니는 시기 같다. 감사할 만한 삶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많은 순간 그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고마움을 내뱉곤 한다. 나름의 성실로 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자부했는데 아주 작은 돌부리에도 위태로운 나를 본다. 때때로 오늘처럼 쉽지 않은 걸림돌도 마주하곤 한다. 고독과 고립을 떠올리는 시기조차 삶은 절대 혼자 살아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털어놓으면 짐을 덜어줄 누군가가 없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침잠뿐이다. 순간의 선택이 얼마만큼 많은 걸 바꿔놓을 수 있는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큰 분기점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뭐가 달라질까 싶으면서도 할 수 있는 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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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일 - 푸른끝문화생활/음악 2021. 7. 14. 22:07
어떤 계절에 생각나는 노래가 있는가 하면, 늘 같은 계절로 데려가 주는 노래도 있다. 정준일의 푸른끝은 들을 때마다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바쁜 일과를 보내고 돌아온 방에서 안락함보단 눅눅함을 느끼는 날, 가슴까지 서늘한 노래를 꺼내본다. 좋은 것들은 시절마다 다른 의미로 되새겨지곤 한다. 이 노래는 나에게 늘 중의적으로 다가온다. 푸른 청춘의 종말을 고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신록의 시작을 알리는 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시절과 지금이 다르듯 앞으로도 이 곡에서 나는 또 다른 목소리를 발견할 것이다. 잠잠히 듣다 보니 못 다한 사랑에 대한 회한으로 느껴지던 가사가 오늘은 자신의 꿈 혹은 삶과 나누는 대화로 느껴진다. 충만하게 주어진 고독을 기쁨으로 누려야겠다. 절망이 쉽고 그 어떤 무엇도 가질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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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 - 여름날 (Feat. 신재평 Of 페퍼톤스)문화생활/음악 2021. 7. 11. 21:45
어떤 계절이 되면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 뎅기열에 걸려 무더위의 무서움을 안 이후로 여름은 부담이 되는 계절 중 하나다. 더불어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유독 무더웠던...*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다. 혹서를 달래주는 노래인 헤르쯔 아날로그의 여름밤이 개인적인 원픽이지만 페퍼톤스의 음악과 목소리도 많이 떠오른다. 뭔가 톡톡 쏘는 탄산음료 같다. 비록 페퍼톤스 노래는 아니지만 신재평 님이 부른 여름이 되면 문득 생각나는 노래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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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나잇 프로젝트(Afternight Project) - 사랑이 올까요문화생활/음악 2021. 7. 6. 22:18
30대에 접어들며 예전에 비하면 타인을 이기적이라며 깎아내리거나 탓하지 않고 상황을 자의적으로 왜곡하는 경우도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도 잘 모르면서 일방적인 진심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막연하게 바란다는 점에서 사춘기 소년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는다. 미성숙함을 순수라 혼동하며 자위해 왔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비판하더라도 자기 연민에는 빠지지 않으려 노력해 그나마 다행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자아를 뒤늦게 존중하기 시작했다. 지난 시간에 대한 태도는 대부분 후회보다는 아쉬움 위에 쌓은 긍정이었다. 이미 생각보다 많이 나이를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짝을 찾는다. SNS에도 누군가의 반려자나 아이 사진이 많아졌다. 나도 잘 살고 있고, 각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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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월간 윤종신 Repair 5월호 - 뒷모습문화생활/음악 2021. 5. 25. 22:01
고됐던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우연히 윤종신 님이 부른 뒷모습을 듣게 됐다. 라이브 버전으로 가끔 들었던 노랜데 새로이 편집된 이번 버전은 무언가 더 심금을 울린다. 눈에 익은 뮤직비디오 주인공들의 뒷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데, 그즈음 나의 지난 시간이 함께 펼쳐지는 기분이다. 곡 설명에 있는 말이 또 한 번 마음을 울린다. 우리가 모두 제각기 다르다는 건 정말이지 당연한 사실이면서도 늘 신기하게 다가와요. 특히 연인들이요.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똑같은 걸 보고 똑같은 걸 듣고 똑같은 걸 경험했는데도 헤어질 때 보면 세상에 이렇게 나와 다른 사람이 있나 싶잖아요. 이별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고요. 어떤 사람은 헤어지기 전부터 빠르고 효율적으로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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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월간 윤종신 Repair 1월호 - 잘 했어요 (With 정준일)문화생활/음악 2021. 1. 24. 20:58
작년 연초엔 박재정 님의 '가벼운 결심'을 고막이 닳도록 들었다. 올해엔 월간 윤종신으로 찾아온 '잘 했어요'란 노래를 열심히 듣고 있다. 내 귀는 미스틱 재질인가 보다. 거기다 정준일 님의 보컬이라니 너무 좋다. 아무도 모르게 쌓인 첫눈처럼 찾아온 첫사랑을 깨달을 즈음부터 윤종신 님의 솔직한 가사와 절절한 음색을 참 좋아했던 거 같다. 나이가 먹을수록 그가 쌓아온 노래들이 점점 더 좋아진다. 그건 노래에 담긴 어떤 찰나의 진심을 조금 더 이해하고 알아볼 수 있게 성장해서가 아닐까 자평해본다. 월간 윤종신은 무려 2010년부터 이어온 프로젝트다. 이제는 노래뿐 아니라 성실하게 주어진 삶을 노래하는 그의 행보 자체가 존경스럽다. 자유와 불안 사이에서 손에 쥐었던 것을 잠시 내려놓았던 '이방인' 프로젝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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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방학,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 - 아이보리문화생활/음악 2018. 1. 29. 00:24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늘 적응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연초의 나이인 것 같다. 그렇게 스물아홉이 되었다. 이십대의 마지막 해, 김광석 씨가 읊조리던 '서른 즈음에' 거의 당도했다. 노래에 나이가 나오면 괜히 그때의 나를 비춰보곤 한다. 하지만 내가 아직 겪지 못한 나이일 경우엔 그저 짐작할 뿐이다. 아이보리에 나오는 스물 아홉이 그러했다. 노래가 나왔을 때 나는 고작 스물셋이었으니까. 그런데 왜인지 그때도 이 가사마냥 평생 외로웠던 것 같은 기분으로 어둠이 내리는 도시의 골목을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걸어가곤 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렇기만 했던 건 아님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지만 인생의 본질 중 하나는 외로움이라고 생각한다. 새삼 나를 되돌아봤다. 짧지만은 않은 6년이 지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