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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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환 (Jung Seung Hwan) - 에필로그 (Epilogue)문화생활/음악 2023. 6. 14. 23:50
시렸던 2022년을 포근하게 감쌌던 발라드 왕세손이 신보를 냈다. 무려 입대 전 마지막 싱글이고 타이틀곡 '에필로그'의 주제는 여름날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을 담았다고...* 그러고 보니 어느덧 또 다시 여름이 왔고, 또 한 번의 생일을 앞두고 있다. 세월은 점점 더 빨리 가는데 나는 여전히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리숙하다. 못난 가슴은 한결같은데 다들 좇기 어려울 정도로 어디론가 바삐 간다. 남겨진 나 또한 어딘가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봤지만 결국 나름의 노력 혹은 일종의 답보에 그치고 만다. 특히 사랑은 찾아야 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찾아오는 게 아닐까 고심하며, 막상 다가오는 은인들을 밀어낸 횟수만 늘어간다. 그래도 스스로 자책하거나 채근하기보단 그냥 지금에 성실하며 나의 시기를 기다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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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 인연문화생활/영화 2023. 5. 21. 22:28
우연히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 인연'을 봤다. 1999년에 시작된 디지몬 세계관 시리즈의 극장판이자 최종장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열심히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보면서 추억도 돋고 감회도 새로웠다. 작중에 얼마 전 다녀온 오다이바가 자주 나와 기분이 더 묘했다. 주인공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전하는 디지몬들은 왠지 사랑이 형과 별이처럼 보여 괜히 울컥하기도 했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와닿았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던 작품...*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 찌든 나에게 속 깊은 디지몬들이 해맑게 말을 거는 듯한 장면이 많았다. #1 "어른이 되면 우리는 함께 있을 수 없는 거야?" #2 "너희가 점점 어른이 돼 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게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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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_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문화생활/전시 2023. 5. 20. 00:24
인간의 고독은 필연적이며, 수용하고 향유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고독의 의미를 탐구하는 건 오랜 습관이 되었다. 에드워드 호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20세기 초 도시의 일상 속 고독을 포착해 예술로 승화시켰다. 데이비드 호크니 개인전이 열렸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번엔 에드워드 호퍼의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가 열렸다. 고독한 나날 속 지인이 같이 가자고 얘기해 줘 고마웠는데 급작스레 못 온대서 이내 다시 더 고독해졌다...* 다행히 다른 친구가 시간이 된대서 외롭지 않게 고독을 누렸다. 오랜만에 찾은 서울시립미술관은 여전히 멋진 외관을 자랑한다. 전시가 오픈한 첫 주의 주말이라 사람이 많을 것 같았다. 일부러 마지막 시간으로 예매했는데 이는 실수였다. 작은 미술관이 아닌데도 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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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Kim Dong Ryul) - 황금가면 (Golden Mask)문화생활/음악 2023. 5. 17. 23:50
내가 블로그에 음악이 빗대 쓰는 단상 중 대부분은 어떤 시기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어느새 5월도 훌쩍 지났다. 작년 이맘때엔 마음의 혹을 떼러 자전거 여행을 갔다가 팔에 깊은 상처만 더 얻고 왔었다. 그게 벌써 1년 전이다. 그 사이 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때론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것 같고 스스로 혹은 타인이 이해 가지 않는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모든 시간이 다 나름의 의미로 내 안에 수용될 줄 안다. 동시에 아직은 청춘이라는 걸 실감하면서도 젊은 날 예민했던 지점들이 점점 더 수더분해지는 걸 느낀다. 어쩌면 간절기 같은 시기가 아닐까 싶다. 숨길 수 없이 늙기 시작한 얼굴과 숨길 수 있게 된 진심의 괴리가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요즈음 누리는 일상의 안온함이 참 감사하다. 사랑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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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_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君子志向문화생활/전시 2023. 5. 8. 21:28
전시를 본 뒤 바로 전을 봤다. 군자에 대한 여러 문장과 함께 다양한 백자를 만날 수 있었다. 리움답게 국보, 보물도 있었다. 이전에 상설전에서 봤던 구면 작품도 다시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오는 길에 읽던 책에 마침 김환기 화백이 '달항아리'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썼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달항아리들을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별들처럼 화려한 조명 아래 고고한 달들이 떠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달에 집중하다 보니 왠지 이 공간이 작은 우주를 담은 것 같다. 여러 도자기를 감상하며 군자의 마음가짐을 헤아리다 보니 왠지 소인배의 마음이 군자를 닮은 백자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기분도 들었다. 조상들이 지향한 삶을 좇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현과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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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_마우리치오 카텔란 : WE문화생활/전시 2023. 5. 8. 21:14
지난 3월, 기획전 보러 거의 1년 만에 리움미술관을 찾았다. 운 좋게 취소표를 딱 예약했다. 입구부터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이 맞이한다. 이탈리아 태생의 작가로 극사실적인 조각과 회화로 권위와 인식을 뒤집는 데 능하다고 한다. 여닫히는 작은 엘리베이터 옆에 진짜 엘리베이터가 있다. 시작부터 오묘한 기분이 든다. 많은 작품이 정말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리움의 공간과 어색한 듯 잘 어우러졌다. 아버지의 발은 왠지 자연스레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작품이 나름의 위트를 담고 있다. 풍자와 해학의 민족이 참 좋아할 만한 전시인 것 같다.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기에 가보니 세 발 자전거를 타는 '찰리'라는 작품이었다. RC카처럼 원격 조종으로 전시장으로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었다. 개를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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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Toy) - 세 사람 (With 성시경)문화생활/음악 2023. 4. 9. 21:36
막역한 죽마고우와 베프가 결혼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좋은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주제넘게 흐뭇하고 감사하다. 각자의 서사를 웬만큼 이해하기에 결혼으로 완결된 그들의 지난 시간과 새로운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었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벗들이다 보니 하객 중에 아는 사람이 참 많았다. 초중고 시절을 비롯해 심지어 대학 생활까지 넘나드는 뜻밖의 반가운 얼굴들로 놀라곤 했는데, 숫기가 없던 십 대에 성과 이름을 함께 부르던 여자 사람 친구들에게 서슴없이 이름만 부르며 알은체하는 내 모습도 놀라웠다. 태어나 처음으로 이름만 불러 본 초등학교 동창도 있었다. 친한 셋 중 둘이 결혼하는 이야기는 자연스레 토이의 '세 사람'이란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나의 경우, 짝사랑으로 점철된 인생이지만 다행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