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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태백·동해_2일차(1)_함백산·검룡소기행/국내 2024. 4. 28. 19:52
간밤에 역시나 여러 번 깨고 얕게 자다 새벽에 완전히 깼다. 성지사우나 목욕탕에서 씻고 시간을 보내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인 함백산 일출을 보기 위해 5시 반쯤 나왔다. 이때 키오스크 결제가 아니라 카운터 직접 결제면 키 보증금 천 원을 못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내심 황당해하는 동시에 그래도 저렴하게 잘 묵었다고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차가워진 황지스낵의 만두를 맛있게 먹으며 함백산 등산로 입구 근처에 주차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차가 많아 놀랐다.
함백산은 정선군과 태백시 경계에 있는 해발 1,572m의 산이다.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6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등반 시작점의 해발고도가 높아 다른 곳들에 비해 등산 난이도가 쉬운 편이다. 6시쯤 등반을 시작했다. 설경 명소로 유명한 곳이지만 3월이었기에 아이젠은 필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강원도는 위대했다. 초입부터 눈길이었다. 고민하다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가본다는 마음으로 겁 없이 그리고 아이젠과 등산 스틱도 없이 어둠과 적막이 가득한 설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오르니 등산화는 접지력을 잃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부분의 구간에 잡을 수 있는 줄이 있었다. 클라이밍하는 느낌으로 전신을 이용해 간신히 올랐다. 충분한 안전 장비 없이 무리해 위험하게 올라온 건 정말 잘못한 일이지만 감사하게도 큰 사고 없이 오를 수 있었다. 어느덧 날이 밝으니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유명한 함백산 상고대도 직접 볼 수 있어 감개가 무량했다.
총 40분 정도 걸려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석에서 사진 찍고 설경에 감탄하고 있으려니 곧바로 추위가 온몸을 에워쌌다. 금방 손끝에 감각이 얼얼해져 놀라다 일출을 보며 한 번 더 감동받았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인 보람이 있다.
더 보고 싶었지만 오래 있기엔 너무 춥고 내려가는 게 걱정돼 금세 출발했다. 두 발로 내려가는 게 거의 불가능해 다시 줄과 나무에 의지해 내려왔다. 몇 번 넘어지기도 했지만 줄을 이용해 마치 레펠 강하와 미끄럼틀 사이 무엇으로 내려오는 요령도 생겼다. 여기저기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으나 어디 안 부러진 게 기적이었다. 우스꽝스럽게 내려가는 내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진 분들도 있었지만 나는 정말 진지하게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기분이었다. 충분한 준비 없이 무모하게 시작한 설산 등정은 여기저기 통증을 남긴 뜻밖의 익스트림 스포츠가 되었다. 돌아보면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어떻게 오르내렸나 싶은데 어쨌든 걸어 냈다. 다음에 또 설산을 오를 기회가 있다면 안전 장비를 꼭 챙기리라...*
내려와 어제 사 둔 크림빵을 먹으며 동해로 향했다. 눈길에서 하의가 다 젖어 찝찝했는데 다행히 어느 산사의 화장실이 개방되어 있었다. 기독교인으로서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드리며(?) 다 젖은 바지와 속옷을 갈아입었다.
원래 바람의 언덕에 가 보고 싶었는데 제설이 안 됐다는 경고문을 보고 겸허하게 지나쳤다. 실제로 근처를 오가는 길에 몇몇 곳에서 바퀴가 헛돌아 구동력 제어장치를 잠시 끄고 빠져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동해로 향하다 우연히 동선이 겹친 검룡소에 갔다. 검룡소는 예로부터 용신이 사는 못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무기가 용이 되고자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몸부림을 친 장소라는 전설이 내려져 온다. 지금은 한강의 발원지로 유명하다.
별다른 기대 없이 찾은 곳인데 길이 생각보다 아름답고 적당히 길었다. 나올 때 마주한 한 가족 외엔 이 넓은 곳에 오롯이 혼자였다. 조금 음산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한적하니 더 좋았다.
호젓한 숲속에서 홀로 검룡소를 마주하는 순간은 참 특별했다. 고요한 가운데 물만 졸졸 흘러 괜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오는 길에 검룡소 직원분이 저 앞에 고라니가 있으니 비켜 가라고 하셨다. 나는 저 멀리 길 위에 검은 물체를 말씀하시는 줄 알았는데 자꾸 앞으로 가지 말라고 하셔서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저렇게 근처 수풀에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에서 자란 촌놈은 사람에게도, 야생 동물에게도 겸연쩍었다. 다행히 이미 신고하셔 치료해 줄 전문가들이 오고 있단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부디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나오는 길에 근처 풍경은 왠지 러브레터의 명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검룡소는 여러모로 감성을 자극했다.
이어 이니셜디 감성(?)의 꼬부랑길을 지나 동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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