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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안동_1일차_시루봉휴게소·안동구시장·우정찜닭·영호루·만휴정·묵계서원·카페만휴정·에어비앤비 안동 준형 / 채영이네·월영교·월영당·문보트·서울막창·홈플러스 안동점기행/국내 2023. 1. 18. 00:01
바로 지난주 주말, 동해에 다녀오며 운전을 도맡았기에 한 주 내내 여독이 짙었다. 온몸의 피로와 더불어 내향인으로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한 시절이 지나면 절대 누릴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알기에 다른 소중한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무리해 2주 연속 여행을 떠났다. 정신없이 한 주를 보내고 떠나는 날 아침에 대충 짐을 꾸렸다. 원래 친구 차로 편하게 가려다 어쩌다 보니 또 내 차와 함께 교통을 맡았는데, 차도 몸살이 왔는지 안동으로 내려가는 길에 갑자기 하향 전조등 하나가 나갔다...* 지친 운전자는 애마를 다독이며 중간에 시루봉휴게소에서 몬스터 에너지 한 잔으로 힘을 짜냈다.
다행히 길은 많이 안 막혀 국도로 갔는데도 3시간 40분 만에 도착했다. 2시쯤 직접 안동으로 온 친구를 픽업해 일행을 완성하고 안동구시장에 갔다. 오밀조밀하게 여러 가게가 모여있는 거리가 정겹다. 안동 바이브를 느끼며 시장 아케이드 안에 위치한 안동 우정찜닭에서 묵은지쪼림닭을 먹었다. 이름은 생소했지만 맛은 김치찜의 익숙한 그것이었다. 찜닭으로 유명한 고장답게 색다른 조합이 즐거움을 줬다.
든든한 식사 뒤 낙동강변에 위치한 영호루에 갔다. 고려 시대에 지어진 누각이 여러 차례 유실과 재건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텅 빈 정자를 가득 채운 고요와 함박눈처럼 낙낙하게 쌓인 원색의 낙엽, 멀리 보이는 안동 전경이 아름답고 여유로웠다.
그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나오다가 맞은편에서 급하게 오는 차와 사고가 날 뻔했다. 긴장을 안 한 건 아니지만 타지 속 외지인임을 새기며 조심을 다짐했다. 다시 한 30분 달려 만휴정에 도착했다. 입장료 천 원을 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바위가 많았는데 사고가 잦았는지 곳곳에 귀여운 새가 살벌한 멘트를 해맑게 전하고 있다. 알고 보니 애니메이션 엄마 까투리의 '마지'라는 캐릭터였다. 해당 작품의 원작이 안동에서 오랜 시간 터를 잡고 살아간 권정생 작가의 유작이라 안동시 브랜딩에 활용하는 듯하다.
만휴정은 '말년에 쉬는 정자'라는 이름처럼 조선시대 문신 김계형 선생이 만년을 보내기 위해 지은 곳이다. 산세가 아름다운 곳에 동양화처럼 자리한 한옥을 볼 수 있었다. 돌다리 전후로 공간의 시퀀스가 독특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 애쓰고 있어 오가기에 조금 불편했지만 마음은 흐뭇했다.
이곳에서 인기 드라마였던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도 이뤄졌다고 한다. 나는 드라마는 뒤로하고 매표소까지 오가는 길이 고즈넉해 좋았다.
근처 안동 묵계서원으로 이동해 관광을 이어갔다. 앞서 뵌 김계행 선생과 조선시대 또 다른 문신이었던 옥고 선생의 뜻을 이어갔던 서원이었다. 당시 서원은 선현을 기리는 제사와 후학을 기르는 교육의 기능을 겸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과거와 미래가 이어진 현재가 펼쳐지던 곳이 아니었을까 혼자 추측해 본다.
바로 옆에는 한옥과 서양 문물이 조화롭게 만난 카페만휴정이 있다. 공간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 쌍화라떼를 마셨다. 쌍화차와 우유의 만남이 처음엔 생소했지만 마시다 보니 뜨끈하니 몸을 데워줬다.
어느덧 해가 넘어가고 5시 반쯤 지나 다시 도시로 향했다. 확실히 산길과 외진 국도라 길이 꽤 많이 어두웠다. 한쪽 전조등에 의지해 조심히 운전했다.
에어비앤비로 찾은 숙소 '안동 준형 / 채영이네'는 좀 낡았지만 나름 정감 가는 곳이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공간이 넓고 방이 3개나 됐다. 다만 주차장이 별도로 없고 동네에 주차할 공간보다 차들이 더 많아 꽤 헤맸다. 어렵사리 차를 두고 좀 쉬다 다시 나왔다.
야경을 보기 위해 월영교 근처 주차장을 기웃거리다 우연히 주차한 곳 근처가 명당이었다. 카페 월영당의 인공 보름달을 구경하고 친구의 제안으로 급작스럽게 문보트를 탔다. 이렇게 전기로 가는 관광용 배는 처음으로 타 봤는데 음악, 조명, 온도 다 좋았다. 물 위에서 바라보는 월영교가 참 어여뻤다. 한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다리여서 그런지 프라하 카를교에서 느꼈던 들뜸 비슷한 낭만이 있었다. 25분 정도 적당히 타고 반납했다. 문보트가 갈 수 있는 영역은 줄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 와중에 선을 넘다가 스스로 올가미에 걸린 배가 있어 어수선했다.
조금 걷다가 다시 안동구시장으로 이동했다. 안동 막창골목에 있는 서울막창서 9시 다 되어 돼지막창을 먹었다. 나는 술을 별로 안 즐기기도 하고 운전을 해야 해 음료수와 먹었는데도 엄청난 안주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쫄깃하고 담백한 막창에 입힌 불 향이 인상적이었다. 문득 무심한 듯 속정이 깊은 노포의 시끌벅적함은 왠지 침묵의 일면과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 보러 홈플러스 안동점에 갔는데 입구에서 뒤도 안 보고 후진하는 차량이랑 사고 직전까지 갔다. 막힘없이 뒤로 전진하는 움직임이 부딪힐 정도로 박력 있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경적을 울려 간신히 멈춰 세웠다.
다시 숙소에 오니 10시가 넘었다. 갱신된 주차 퀘스트를 마친 뒤 각자 씻고 쉬다 카타르 월드컵을 시청했다. 첫 경기는 아르헨티나를 잡고 돌풍을 일으킨 사우디아라비아와 폴란드의 시합이었는데 레반도프스키의 월드컵 첫 골과 울컥함을 생중계로 볼 수 있었다. 괜히 나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새우 강정과 어묵 그리고 과자로 가벼운 듯 무겁게 야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참 여전한데 한편으론 한순간도 머물지 않았던 우리들이다. 잠깐 옥상에서 혼자 별 보는 것도 고독하고 좋았다. 덴마크와 프랑스의 경기까지 보며 쌍꺼풀이 짙게 생길 정도로 피곤했으나 그냥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눈치 없이 즐거워 버티고 버텼다. 결국 꽤나 늦은 시간에 제일 먼저 잤는데 잠결에 정다운 웃음소리가 자장가처럼 귓가에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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