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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국립현대미술관 과천_대지의 시간·놀이하는 사물·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문화생활/전시 2022. 3. 6. 15:11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경복궁에서 개관한 후에 1986년 과천관, 1998년 덕수궁관, 2013년 서울관, 2018년 청주관을 개관하며 현재의 4관 체계를 이뤘다. 각 관별로 고유한 분위기와 목표를 지니고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수준 높은 전시를 누릴 수 있어 특히 더 애정하고 많이 찾는 미술관이기도 하다. 그중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은 어린이·가족 중심의 자연 친화적인 미술관을 표방한다. 인근 지역에서 자란 나는 어려서 이곳에 견학을 오기도 했고,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미술관 앞에서 찍기도 했다. 이후에도 여러 추억이 층층이 쌓인 장소에 보고 싶은 기획전이 있어 들렀다.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은 이곳의 수문장 같다. 1988년에 제24회 서울 올림픽과 맞물려 미술관에 맞게 기획된 작품이다. 이전에 왔을 땐 상영되고 있었는데 2018년 2월부터 전면적인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수리하거나 교체가 가능한 것들은 브라운관 모니터로 유지, 더 이상 사용이 불가한 것들은 LCD로 교체했고 한동안 특정 시간에만 시험운전을 진행한다고 한다. 조금 아쉬웠지만 꺼진 모니터도 나름의 예술성이 느껴졌다.
1. 대지의 시간
작년 11월 25일부터 시작한 <대지의 시간>은 원래 2월 27일까지 진행 예정이었으나 3월 27일까지로 기한이 연장됐다. 우리 시대의 화두인 '생태학적 세계관'을 탐색, 지향한 16명 작가의 35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 사이사이에 배치된 세 가지 크기의 구체는 작품과 관객, 공간을 비춘다. 이를 통해 유동성, 가변성, 연결성이라는 생태적 가치를 담고자 했단다.
김주리 작가의 <모습>은 마치 흙이 땀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전 리움미술관에서 올라퍼 엘리아슨 작가의 작품을 봤는데, 또 다른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총 12개에 이르는 각각의 돌과 구슬은 한 달을 의미한다. 두 번째에 놓인 유리구슬이 시간의 의미를 되묻는 듯했다.
히로시 스기모토 작가의 디오라마 시리즈 사진은 박제된 동물의 생동감 넘치는 사진을 통해 인간 중심의 사고를 되돌아보게 했다.
서동주 작가의 비전은 카메라와 영상을 통해 작품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묘했다.
그 외에도 대만 원주민에 대한 연구, 이스라엘 사해에서 담은 소리와 영상, 새의 시선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생태라는 주제로 이끌었다.
중앙 홀로 이동하면 한국 생태미술의 연대기와 함께 다양한 작품이 아카이브 형태로 전시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공감각적인 자극을 주던 김보중 작가의 작품들이 좋았다.
나오는 길에 마주한 장민승 작가의 <대공원>은 과천에 위치한 서울대공원, 경마장 등에 있는 동물들의 눈맞춤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공연한 동물에 대한 착취에 대해 무심하고 무지하게 침묵했던 건 아닌지 왠지 부끄러웠다. 생명과 맞닿은 생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괜히 더 어렵고 지레 부담을 느낄 때도 있었다. 물론 가볍게 생각할 주제는 절대 아니지만 보다 나은 생태를 위한 고민과 질문에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걸 배운 전시였다.
2. 놀이하는 사물
이어 관람한 <놀이하는 사물>은 작년 6월 10일부터 시작해 2월 27일로 전시가 마무리된다. 서정화, 신혜림, 이광호, 이상민, 이준아, 이헌정, 현광훈, NOL 총 8팀 11명의 작가들이 재료의 고유한 물성에 각자의 숙련된 기술을 더해 총 30여 점의 재밌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전시 소개에서는 제작자들의 사적인 놀이와 작업 과정을 공공 공간으로 옮겼다고 설명했지만 창작의 고통이 없진 않았을 것 같다.
이광호 작가는 유년 시절 일상 소재들을 다양한 오브제로 직조했다. 민트색은 아니지만 나이키 슈즈가 탐난다.
서정화 작가는 곡선과 직선의 구조를 반복된 형태로 조합해 독특한 공간을 구현했다.
이준아 작가는 섬유의 직조를 통해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독특한 언어를 담았다.
이헌정 작가는 고인돌 초콜릿처럼 생긴 도자기를 이어 붙여 고인돌 같은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
현광훈 작가는 카메라와 시계라는 오브제를 통해 시간과 기록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신혜림 작가는 가죽 끝, 실과 같은 소재를 통해 쏟아지는 시간의 비와 같은 작품을 각각 선과 면으로 구현했다.
KLO의 이광호와 APR의 남궁교, 오현진으로 이루어진 공간 프로젝트 그룹 엔오엘은 은박지 질감이 나는 독특한 전시 공간을 비롯해 각기 다른 소재로 만든 질감이 서로 다른 책들을 전시했다. 손으로 읽는 책이 책의 의미에 대해 사유하게 했다.
3.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는 지난 10월 8일 시작해 2023년 12월 17일까지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이름 그대로 '정원'을 통해 자연과의 느리고 빠른 대화를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2년에 걸쳐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 작가가 원형 정원에 조성한 조경을 통해 과천의 사계절을 담아낼 예정이라고 한다.
아직 겨울이라 을씨년스러웠지만 이조차 하나의 계절이고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홀로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이런저런 상념을 띄워 보냈다.
기획전을 모두 본 뒤 상설전도 보고 싶었지만, 이전에 보기도 했고 오늘은 왠지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혼자 여기저기 잘 다니는 편인데 왠지 모르게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 하루였다. 생태를 지향하는 예술과 놀이하는 예술가들 속에서 홀로 헤맸다. 나오는 길에 고3 시절 친구들과 함께 찾았던 장소가 나의 쓸데없는 외로움을 추억으로 달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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