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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가을 제주_2일차_한라산 등산(관음산 탐방로-삼각봉 대피소-백록담) (feat. 글로벌 6K 하이킹)
    기행/국내 2021. 10. 17. 12:28

    새벽같이 일어나 미리 준비한 아침을 먹었다. 아프리카 출장에서 특식으로 먹곤 했던 컵반을 오랜만에 먹었다. 김치날치알밥 맛을 먹었는데 대학시절 학교 앞에서 먹던 자극적인 알밥 맛이 났다. 믹스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왠지 결연하게 나섰다.

    일찍부터 부지런을 떤 이유는 오늘 한라산에 오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혼자 성판악 탐방로로 올라 관음사 탐방로로 내려왔는데 이번엔 친구들과 함께 관음사 탐방로로 왕복할 예정이다. 아직 기억에 선명한 관음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정에 없던 일인데 소소한 변곡점 덕에 같이 오르게 됐다...*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와 김밥을 사고 7시 50분 즈음 등반을 시작했다.

    오른지 2시간 50분 만에 삼각봉 대피소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찾아 반가움도 들었지만 역시 한라산은 크고 높다. 각자 체력이 다르다 보니 혼자 오를 때완 달리 서로 배려하는 것도 필요했다. 대피소에서 인스턴트커피와 과자로 요기하고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하늘이 정말 맑았다

    지난번엔 겨울에 왔었는데 가을에 오니 확실히 푸릇푸릇하다. 계절마다 한라산의 경관은 다르지만 한결같이 아름답다.

    정상이 가까워지는 게 체감되지만 백록담은 나올 듯 나오지 않았다. 다리는 무거워지지만 마음만은 점점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12시 30분 즈음 마침내 백록담에 도착했다. 운 좋게 이곳에 온 두 번 다 날이 맑았다. 이번엔 호수에 물도 꽤 있었다.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며 집에 연락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맞는 바람이 참 시원했다. 

    모두 도착한 뒤, 정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혼자 왔을 땐 초코바만 먹고 맛있는 거(?) 드시는 분들을 부러워하며 내려갔는데 이번엔 준비성 철저한 친구 덕에 컵라면에 김밥을 먹었다. 남은 물이 적어 짜게 먹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가루수프를 덜 넣으면 되는 거였다. 많이 힘들었나 보다..* 그래도 호화로운 식사로 예전의 작은 설움을 날렸다.

    여기까지 왔으니 인증 사진도 찍고 월드비전에서 진행하는 2021 글로벌 6K 하이킹 시즌2에도 참여했다. 등산 후 SNS 인증 미션에 참여하면 추가 기부가 되는 비대면 기부 프로그램이다. 정상석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게 미션이었는데 뒤늦게 가니 줄이 너무 길었다. 하산 시간인 2시가 임박해 못 찍겠다고 생각했는데 친구의 기지로 멀찌감치서 도둑촬영(?)을 했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사실상 떨어진 물에 걱정은 됐지만 바꿀 수 있는 게 없으니 기운 내어 내디뎠다. 마음과는 달리 벌써부터 다리는 후들거리고 무릎은 시큰했지만 아름다운 자연이 힘을 줬다.

    정상 언저리에는 등산객의 음식을 기대하는 까마귀 님들이 많이 계시다. 시혜가 아닌 호혜의 관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왠지 여러모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꾹 참고 내려와 삼각봉 대피소에 약 1시간 만에 도착했다. 내려오는 길에 핸드폰을 떨어뜨렸는데 그때 S펜이 빠졌다. 떨어뜨린 장소를 기억하고 뒤에 오던 친구한테 연락하니 마침 거기였고 다행히 유실물은 그대로 있었다. 잔디밭에서 바늘을 찾아낸 기적 덕에 감격스러운 재회를 할 수 있었다.

    좀 쉬다 다시 힘을 내서 출발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길을 걸으며 '한라산은 거대하다'라는 명제를 몸소 느꼈다. 대자연의 위대함 앞에 겸허함을 배운다.

    6시 10분 즈음 마침내 밖으로 나왔다. 정상에서 물이 거의 다 떨어진 뒤로 갈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근처 편의점에서 물과 음료부터 사 달게 마셨다. 물은 생명이란 뜻의 'Maji ni uhai'라는 스와힐리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내 모두 내려왔고 어느새 해가 졌다.

    다들 어디 가기엔 너무 지쳐 근처 아라동으로 이동했다. 흥부라는 식당에서 순대볶음을, 푸라닭에서 치킨을 포장해 먹었다. 제주식 찹쌀순대는 처음으로 먹어봤는데 신기했다. 돼지 냄새가 강한 순대볶음 속 곱창이 별미였다. 저녁 먹고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익숙해진 2층에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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