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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이탈리아 기행_6일차(4)_아시시_로카 마조레·리스토란테 피쩨리아 이 모나치기행/해외(유럽) 2020. 9. 6. 14:49
아직 날이 밝건만 어느새 저녁이 가까워졌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며 숨어있던 십자가를 발견했다. 길은 갈 때와 올 때 같은 풍경 속 다른 얼굴을 한다.
조금씩 변하는 하늘과 한결같이 아름다운 거리를 만끽하며 걷고 또 걸었다.
슬슬 저녁을 먹기 위해 찾아본 곳 중 가장 마음에 들던 리스토란테 피쩨리아 이 모나치(Ristorante Pizzeria I Monaci)로 향했다. 오후 7시부터 오픈인데 내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봤지만 역시나 굳게 닫혀있는 문...*
기다리기엔 시간이 많이 남아 근처에서 프로슈토 들어간 파니니를 사서 석양도 볼 겸 로카 마조레로 향했다.
그새 해가 많이 떨어졌다.
왜인지 피톤치드가 느껴지던 거리.
윤동주 서시에 나오는 시구처럼 자꾸만 우러러보게 만들던 하늘.
오르막길에서 내려다본 지붕은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알록달록하고 앙증맞은 베스파도 마주했다. 다르게 커스텀 된 베스파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부러 좀 돌아가는 길로 갔는데 너무 좋았다. 20분 정도 한적한 길을 만끽했다.
그렇게 도착한 로카 마조레(Rocca Maggiore)! 12세기에 처음 지어졌던 것이 소실되었다가 14세기에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아시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전경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요새 내부 관광도 가능했는데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고 굳이 안 봐도 될 것 같아서 외관으로 만족했다.
로카 마조레에서 마주한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을, 내다보이는 평야, 눈앞에 펼쳐진 하늘. 그리고 함께 자리한 오래된 요새와 사람들 모두 아름다웠다.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며 내 인생에서 두고두고 오래도록 기억된 순간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날의 공기와 기분을 미리 되새기며 미리 챙겨간 질기고 짭조름한 빵을 갈비처럼 뜯었다.
넋 놓고 보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파스텔톤으로 물드는 하늘이 장관이다.
반팔만 입고 갔는데 찬 바람이 꽤나 불어 으슬으슬했다. 하지만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간에 비하면 작은 걸림돌이었다. 일행은 없었지만 석양을 함께 바라보는 이들과 동행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좋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붉게 물들던 하늘은 감히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자연스레 그 땅 위에 부끄럼 없이 머문 한 삶을 기억할 수 있었다. 모든 게 아름다워 한참을 우러러본 아시시의 많은 순간은 그렇게 소중하게 간직됐다.
대부분의 사람이 해가 지며 마을로 내려갔지만, 오히려 이 시간을 찾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봤던 것 같다. 동시에 손등 위 모래처럼 스쳐가는 시간이 아쉬워 찰나라도 잡기 위해 열심히 기록했다. 마을에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해가 진 뒤, 조명이 켜진 아시시는 또 다르게 매력적이었다.
꽤나 쌀쌀해진 공기 속 한기를 느끼며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하산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올 때와 다른 길을 택했는데,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한낮의 더위가 가신 광장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다시 식당을 찾으니 어느새 9시가 다 되었다.
특이하게도 입구에서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입구가 두 곳인 것 같았다.
루꼴라피자에 스파클링와인 1/4병을 시켰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편인데, 여행지에 가면 괜히 더 당긴다. 화덕에 직접 구운 피자는 맛있었지만 역시나 짰다.
입가심을 돕던 와인이 동이 나 맥주를 시켰다. 사실상 하루 종일 먹은 제대로 된 첫끼라 그런지 뭔가 급 긴장이 풀리고 취기도 더 올라왔다. 나름 이것저것 시킨 것 같은데 14유로밖에 안 나왔다. 가성비까지 완벽하다니.. 그라찌에...*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하러 가는 마지막 길. 숙소까지 그리 멀지 않았는데 취기가 올라와 조금 어지러웠다. 하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다. 성 프란치스코를 기리기에 적절한 마무리는 아닐지 모르지만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웠던 하루 중 하나로 기억될 날.
검은 하늘마저도 반짝이던 아시시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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