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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내일로_5일차(1)_강릉_정동진역·정동진·정동심곡 바다부채길·심곡항·시골식당기행/국내 2021. 1. 1. 10:23
막상 다른 곳에서 자려고 하니 이미 좋은 자리는 다 찼고, 잠도 깨서 결국 거의 못 잤다. 뒤척거리다 새벽 5시도 안되어 목욕탕에서 씻었다. 사람이 거의 없어 전세 낸 듯 여러 탕을 섭렵하며 한껏 여유를 부렸다. 그러다 뜬금없이 군대에서 초소 야간 경계근무 설 때 혼자 좋아하는 노래를 맘으로 부르고, 몇몇 추억을 비디오 재생하듯 속으로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던 게 생각났다. 새벽이라 그랬을까...? 급작스럽게 감상에 젖은 마음을 추스르고 짐 챙겨 찜질방을 탈출했다. 5시 30분쯤 나오니 아직 도시도 잠든 시간이었다.
15분 정도 걸어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6시 15분 출발하는 정동진행 기차에 탔다.
2~3시간은 꾸벅꾸벅 졸기 바빴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어제 사둔 삼송빵집 빵과 새벽에 산 우유로 아침 식사를 했다. 입맛도 없고 빵도 사고 하루 지나 그렇게 맛있는 조식은 아니었다.
대구에서 정동진이 위치한 강릉까지는 꽤나 먼 거리라 오랜 시간 기차를 탔다. 그 시간만큼 펼쳐지는 풍경도 다채로워 보는 재미가 있었다. 중간중간 작은 역들에 서는 것도 신기했다. KTX의 속도로는 누릴 수 없는 기차 여행 느낌이 있었다.
6시간을 꼬박 달린 후, 12시가 넘어서야 마지막 여행지, 정동진역에 도착했다.
언제 봐도 옳은 동해 바다와 낯익은 정동진이 반갑다. 답답했던 속을 뻥 뚫어주는 것 같은 겨울바다였다.
근처에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 새로 개통됐대서 가보기로 했다. 그동안 해안경비를 위해 군 경계근무 정찰로로만 사용되던 길을 일반인을 위한 산책로로 조성했다고 한다. 정동진 썬크루즈 주차장과 심곡항에 각각 매표소가 위치해 있는데 거리는 약 2.86㎞였다. 원래 버스로 심곡항에 가려고 했는데 버스는 휴일에만 운영하더라. 정동진 썬크루즈부터 가기로 하고 보니 표지판에 1.0km라고 쓰여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완전 오르막길이었다.
분명 기차 여행 중인데 자꾸만 '로드킬'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 내일러였다.
계단을 따라 바다로 나서본다.
겨울 바다와 바람이 매섭다. 하지만 춥기보단 시원하게 느껴졌다. 호쾌하게 치는 파도도 인상적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데크가 쭉 이어진다. 경계 감성이 조금씩 남아있는 바닷길이 참 시원하고 예뻤다.
왠지 없으면 서운한 바위와 그에 얽힌 전설도 있다.
산책을 즐기던 중 어느 커플의 사진을 찍어드리다 내 카메라 렌즈 뚜껑을 산책로 밑으로 떨어뜨렸다. 주마등처럼 스친 우리의 추억...* 바다야 미안... 뚜껑아 고맙고 미안... 두 분은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속상했지만 오늘의 기분도 좋았기 때문에 나름 쿨하게 넘어갔다.
수평선도 참 아름답다. 길이 정말 맘에 들어서인지 괜히 중년, 노년에 부부에게 먼저 말 걸고 사진을 찍어드리기도 했다. 좋아해 주셔서 내가 더 좋았다.
열심히 걷다 보니 어느새 심곡항에 도착했다. 길 말미에 지나가는 젊은 여자 두 분이 '회사 생활 엿 같다', '퇴사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지나쳐서 순간 대답할 뻔했다...*
산책을 마치고 원래 정동진으로 돌아가서 초당두부나 먹을까 했는데 찾아보니 '망치매운탕'집이 근처에 있었다. 동해까지 왔으니 해산물을 먹기로 하고 정겨운 인상의 시골식당에 가서 망치매운탕을 시켰다.
망치는 처음 먹어 봤는데 생선살이 쫄깃쫄깃하니 맛있었다. 약간 작은 아구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찬바람 맞다가 먹는 따뜻한 국물은 진리였다. 도루묵도 서비스로 한 마리 넣어주셔 감사했다.
택시 타고 정동진으로 넘어와 마지막으로 바닷가를 걸었다. 혼자 여행을 오면 자유로움을 오롯이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때때로 외로움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개인적으론 서로 사랑하는 이들이 길을 같이 걷는 모습을 볼 때 그런 마음이 찾아오곤 한다. 나도 언젠가의 누군가와, 지금 곁의 모두와 더 많이 사랑하며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제 진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16:40 청량리행 기차에 몸을 맡겼다.
업무로 국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도 일 마치면 돌아오기에 급급했던 나에게 이번 여행은 내가 스쳐온 많은 도시를 조금이나마 겪고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미련으로 남은 내일로도 해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너무 즐거웠다.
기차 타고 좀 가다 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남은 마약빵 하나, 선물로 사고 소중하게 쥐고 다닌 황남빵으로 마지막 만찬을 을 먹고 망중한을 즐겼다.
10시가 넘어 청량리에 도착했다. 집에 오니 12시가 다 되었더라. 그렇게 어느새 짧은 여행이 끝이 났다. 시끄럽던 내 마음을 잠시나마 고요하게 한 바다, 길 그리고 사람과 순간들을 마음에 소중히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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