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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_제주(2)_유수암리·폴라리스펜션·한라산 등산(성판악 탐방로-백록담-관음사 탐방로)·호근동기행/국내 2021. 6. 20. 22:48
대부분의 일행은 공항으로 간 뒤, 홀로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향했다. 한 번의 환승을 거쳐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1시간이나 걸려 이동했다.
애월읍 내륙에 위치한 유수암리에 내려 20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말이 반기는 제주 내륙의 목가적인 풍경이 이채롭다.
차를 빌리지 않았는데 굳이 이렇게 먼 곳까지 온 이유는 바로 이 숙소다. 좋은 기회가 있어 폴라리스펜션을 무료로 쓰게 됐다.
미국에서 묵었던 숙소가 생각나는 목조 건물이다.
꽤 넓었는데 2층 전체를 혼자 썼다. 특별한 건 없었지만 은근 있을 건 다 있다. 내장재가 목재로 되어 있어 색다른 기분도 든다. tvN 예능 프로그램 숲속의 작은 집도 문득 생각났다.
외진 곳이고 차가 없기에 미리 요기할 거리를 싸왔다. 라면과 바나나우유로 저녁을 때웠다.
배를 채우고 첩첩산중에 홀로 있자니 작은 소리도 잘 들렸다. 목조건물의 특성상 1층에서 움직이는 발소리도 크게 울려 은근 신경 쓰였다. 그래도 잘 자고 새벽 4시 30분에 맞추어 일어났다. 대충 요기한 뒤 정리를 마치고 첫 버스를 타기 위해 6시가 되지 않아 길을 나섰다. 어두운 길엔 말의 기척을 제외하곤 느껴지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했던 빛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에 침잠되는 듯한 불안을 이겨내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저 멀리 가로등 불빛이 보일 때에서야 안도감이 들었다.
30분 정도 걸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 배차가 생각보다 늦어져 정류장에서 멍하니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기억에 오래 남을 정도로 반가웠던 버스를 타고 우선 제주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어느새 7시가 지났다. 281번 버스를 타고 성판악으로 향했다. 한라산을 등반하는 루트에는 여러 개가 있는데, 나는 성판악으로 올라가 관음사 쪽으로 내려올 예정이다. 오는 김에 보다 다양한 한라산의 모습을 담고 싶어 욕심을 부렸다. 덕분에 차를 렌트하지 않고 사서 고생을 좀 했다.
성판악 탐방안내소에 도착하니 거의 8시다. 해가 슬슬 올라가고 있고 사람들이 점점 모여드는 분위기였다.
성판악 탐방로는 총 9.6km로 이뤄진 코스다. 지금부터 4시간 30분 소요 예정이다. 8시에 입산했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떤 덕에 동이 터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등산할 수 있다.
꼭 1시간 만에 속밭대피소에 도착했다. 물 한 모금, 초코바 하나, 믹스커피 타온 거 한 모금으로 충전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걷다 보니 산속에 모노레일이 있다. 신기했다.
30분 만에 사라오름 입구를 지나고, 또 30분 정도 더 걸으니 진달래밭대피소가 나왔다. 12시까지 여기에 오는 게 목표였는데 10시에 도착했다. 다리가 조금씩 후들거렸지만 여기까진 그럭저럭 괜찮았다. 해가 뜨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숲의 빛과 고도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풍경을 보는 게 쏠쏠하게 즐거웠다. 대피소에서 한 번 더 동일한 구성으로 당보충하고 다시 이동했다.
여기부터 정상까지는 경사가 꽤나 가팔랐다.
계단도 많고 힘들었지만 어느새 구름 위로 올라가 걷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 내딛는 듯한 기분이 상쾌했다.
어느새 해발 1,900m다!
드디어 보이는 오르막의 끝...*
정상 언저리에 까마귀들이 많았다. 추측하건대 관광객들이 먹을 것을 많이 주는 것 같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 맑은 하늘 아래 백록담을 만나니 세상 좋았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백록담을 볼 수 있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흐린 날이 많다고 들었는데 운이 좋았다. 11시 20분쯤 도착해 구경하며 사진 찍고 영상통화로 이 순간을 나누었다. 겨울이라 물이 마른 건 조금 아쉬웠지만 그 조차도 감지덕지다.
정상에서 간식을 먹었다. 앞선 대피소에서 먹었던 것과 똑같은 것들인데 정상의 풍경에 여유와 성취를 더해 더 맛있었다.
아쉬움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눈과 영상으로 백록담을 담아 본다. 까마귀 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하산을 시작했다.
12시 즈음 관음사 탐방로에 들어섰다. 이제 여기부터 8.7km 구간이다. 소요시간은 5시간 정도였다. 길이 가파른 대신 그만큼 산 밑이 훨씬 잘 보였다. 구경하며 쉬엄쉬엄 가기로 했다.
걷다 문득 돌아본 한라산의 산세와 푸른 겨울 하늘이 정말 아름답다. 분명 한 겨울인데 제주에서는 늦가을이 채 가지 않았다.
1시쯤 삼각봉대피소에 도착해 마지막 초코바를 먹었다.
이어 2시 10분쯤 탐라계곡대피소에 도착했다. 2.8km 정도 되는 구간이 길이 빡세서 힘들었다. 돌길... 절레절레...*
하산은 보통 등산보다 짧은 기분이다.
2시 45분 즈음 구린굴을 지나고 3시 10분에 탐방로 입구에 도착했다! 진짜 완전히 녹초가 됐다.
관음사지구지소에서 천 원 내고 한라산등정인증서를 받았다. 대충 씻고 올 갈아입고 나니 피로가 몰려온다.
우간다에서 다친 발목이 아직 아팠는데 진짜 내가 생각해도 사서 고생한다. 젊음을 담보로 많은 순간 나의 무모한 여정을 버텨준 몸에 새삼 고맙고 미안하다...*
버스 타고 시내로 향했다. 안녕 한라산!
제주대학교를 지나 제주시청에서 내리니 어느새 4시 반이다. 제주 향토음식인 몸국을 먹어보고 싶어 근처 식당에 갔는데 아직 문을 안 열었다. 근처 스타벅스에서 먹어보고 싶던 지역 한정 메뉴, 제주 말차샷 라떼를 마셨다. 특별한 맛은 아닌데 내 취향이다...*
피로 좀 풀고 6시 좀 안 되어 다시 밥 먹으러 갔다. 이고초려로 가는 발걸음이 피곤함에 찌들었다.
호근동에서 먹은 몸국은 돼지고기 육수에 해초인 모자반을 더한 음식이다. 뭔가 미역국과 순댓국 사이의 맛이었다. 맛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좀 생소하고 애매했다.
7시 넘어 드디어 공항으로 향한다.
오래 기억에 남을 특별한 워크숍에 이어 대중교통으로 짧은 탐험을 즐겼다. 제주야 이번에도 고마웠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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