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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 콘서트 BIRDMAN – 서울문화생활/공연 2022. 1. 16. 23:02
나름 여리고 내성적이었던 마음 때문에 슬픔이나 아픔을 겪을 때면 주위에 털어놓기보단 홀로 삭이곤 했다. 그런 나에게 비슷한 온도로 대신 울어주는 발라드 곡들은 크나큰 위로로 다가왔다. 주관적인 해석일 수 있으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느니 차라리 스스로 흉지고 마는 윤종신 세계관 속의 '무해한 찌질이'들을 특히 좋아한다. 자기가 태어난 해에 데뷔한 가수의 노래를 즐겨듣기 시작한 10대 소년은 많은 일을 겪으며 어느새 30대 중반을 앞둔 청년이 되었고, 가수는 월간 윤종신과 이방인 프로젝트 등 다양한 방법으로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다듬으며 그 시간을 성실하게 함께해 주었다. 착실하게 살았지만 왠지 모르게 헛헛함을 느끼던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아껴두었던 그의 콘서트를 홀로 찾았다.
코로나19로 인한 혼란스러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었고, 이는 콘서트 장에도 적용됐다. 4인을 초과하는 인원은 모일 수 없지만 많은 사람과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의아하면서도 감사한 시대의 촌극 속에 올림픽홀로 입장했다.
이번 공연의 제목은 'BIRDMAN'이었다. 2014년 개봉된 동명의 영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2015년 월간 윤종신 2월호로 공개된 노래의 이름이기도 하다. 20년이 넘도록 창작 생활을 이어온 대중 예술가로서 고민과 애환을 솔직하게 담은 곡이다. 때로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을 겪기도 하지만 진정한 솔직은 궁극적인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솔함을 표방한 콘서트가 기대됐다. 윤종신 공식 팬클럽 공존에서 마련해 준 종이 피켓(?)이 이심전심이다. 원래 8시로 예정되었던 공연 시작 시간은 방역 지침으로 7시로 당겨졌다. 이내 나름의 소중한 추억과 명곡들이 뒤섞인 황홀경이 펼쳐졌다.
1. 이별에도 이어지는 삶과의 만남
(동네 한 바퀴, 1월부터 6월까지, 이별의 온도)첫 곡은 최애곡 중 하나인 '동네 한 바퀴'였다. 인생 명반 중 하나로 꼽는 윤종신 11집 동네 한 바퀴에 수록된 곡이다. 2008년 11월 25일에 발매된 앨범으로 내가 풋사랑의 홍역을 앓던 19살에 나온 노래다. 우연히 이 노래를 알고 왠지 가사가 내 이야기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때 바라던 그런 만남과 이별은 없었지만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면 괜히 나를 동네로 나서게 하는 마성의 곡이다. 가난한 추억조차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추억 증폭기 같은 시작이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이어지는 노래는 '1월부터 6월까지'였는데 가사 중 이별을 통보받은 '6월 17일'은 내 생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그 즈음 헤어져 본 경험도 있기에 더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는 노래였다. 이 별에서 살아가며 자연스레 겪게 되는 여러 이별과 별개로 이어지는 삶을 떠올리며 시작부터 촉촉해졌다...*
2. 이방인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
(Long D., 가까운 미래)노래 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윤종신은 2020년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내모는 결단을 한다. 작은 것조차 비우기 어려운 세상에서 흔치 않은 결단이었다. 모두가 성골(?)이고 싶어하는 세태 속에 기득권보다 자유를 택하는 모습이 멋지고 대단했다. 그건 선택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기질이고 운명일 거라고 막연하게 공감했다. 내심 전한 응원과는 별개로 코로나19의 확산은 용감한 이방인의 여정과 맞물렸고 개인사로 인해 그는 예정보다 빠르게 우리 곁에 돌아왔다. 그 시기의 새로운 발견을 오롯이 담은 소중한 노래들과 함께...*
3. 작곡가, 작사자, 가수
(거리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한번 더 이별)윤종신은 다른 가수들에게 수많은 명곡을 건넨 작곡가이자 작사가로도 유명하다. 창작기를 담은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라는 산문집을 내기도 했다. 다른 목소리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담은 여러 명곡을 정말 좋아하고 많은 위로를 받곤 했다. 이미 유튜브를 통해 그의 라이브를 들어본 적이 있음에도 즐겨듣고 가끔 부르기도 하는 노래들을 창작자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들으니 감동이 배가됐다. 꾹꾹 눌러둬 기억하지 않던 기억과 감정들이 쉽게 펼쳐졌고, 사회생활을 핑계로 건조해 둔 감성은 어느새 범람하여 그렁그렁하게 눈시울을 적셨다. 노래가 가진 힘을 새삼 깨달은 시간이었다.
4. 찌질이들의 변호인
(부디, 워커홀릭, 좋니)나에게는 극호이지만 윤종신의 노래는 은근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너무 찌질해서 듣기 거북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심 마음에 약간의 체기를 느끼곤 했다. 윤종신조차 예전엔 자기의 대표 감성으로 여겨지는 '찌질함'을 싫어했지만 사실 모두가 가진 감성이고 이제는 그 감정을 사랑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 말이 묘하게 힘이 됐다. 부족함이 흠이 될지 모르지만 그만큼 채우고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결핍을 이해하고 수용해야만 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도 하다. 더불어 그의 대표곡 중 하나가 된 '좋니'에 대해 언급하며 이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혼자 온 남자들이 쌍욕 댓글을 남긴다고 하셔 뜨끔했다. 물론 나는 그에 대해 악플을 달아본 적은 없지만 '혼자 온 남자'였고 가끔 그의 SNS에 용기 내어 댓글을 남기곤 했기에 뭔가 들킨 기분이었다. 쿨한 게 멋진 세상에서 열심히 괜찮은 척하던 K-장남에게 안 괜찮은 걸 먼저 살펴 털어내게 해준 목소리가 따뜻했다.
5. 성실에 기인한 성장과 위로
(야경, 지친 하루)예술가의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페르소나가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하는 걸 깨닫는 건 묘한 위로가 된다. 더불어 내 삶에서 비슷한 성장과 성숙을 발견하는 건 내적인 연대로 이어진다. 풋사랑의 상처에 쓰라릴 때, 첫 사회생활이 녹록지 않을 때 모두 내 곁엔 그의 노래들이 있었다. 내가 겪었던 일들과 지난 마음을 야경을 매개로 객관적으로 돌아보거나,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스로 다독이는 일은 사실 보편적인 일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삶과 노래가 포개지며 생긴 지극히 사적인 특별함이 한 걸음 더 나아갈 힘을 보태주곤 했다.
6. 한 해의 끝과 누군가의 시작
(같이 가줄래, 텅 빈 거리에서)2021년 월간 윤종신은 기존에 발표된 곡을 새롭게 편곡해 선보이는 '리페어'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개인적으로 '동네 한 바퀴' Repair 버전을 꼭 듣고 싶어 1년 내내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아쉽게도 12월까지 그 이름은 나오지 않았고, 올해 마지막 노래는 마침 같은 앨범에 수록됐던 '같이 가줄래'였다. 당장 가사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형태로 내 곁을 지켜주는 많은 존재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더불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며 왠지 더 가슴에 품고 싶은 이야기였다. 덕분에 아쉬움보다는 감사로 월간 윤종신 12호를 반길 수 있었다. 그의 데뷔곡이기도 한 텅 빈 거리에서와 연이어 들으니 감동이 더 증폭됐다.
7. 살며 살아가며 마주하는 운명
(버드맨, 너에게 간다)이번 공연의 제목이기도 한 버드맨에 대해 가수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게 되는 운명에 대해 솔직한 심정으로 풀어낸 노래라고 설명했다. 본질에 가까운 이야기라는 말씀에 어쩌면 우리가 찾아 헤매는 무언가는 솔직함에 맞닿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에게 간다를 이어 들으며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도 어떤 측면에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게 되는 운명과 맞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삶의 본질은 어떤 운명인가 못지않게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바라본 가수는 참 잘 살아가는 어른이었다.
8. 앵콜요청금지의 금지
(나이, 12월)앵콜 곡을 제외하고(!) 준비된 모든 곡을 부른 가수는 장막 뒤로 사라졌다. 공연장에서 앙코르를 외칠 수 있는 권리조차 사라진 세상에서 관객들을 열심히 손뼉을 쳤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우리의 버드맨은 마지막으로 나이와 12월을 선물했다. 세월을 직시하게 하고, 또 막연한 희망을 품게 하는 목소리로 관객과 가수는 같은 감동을 공유했다. 공연장 스크린에 드러난 벅찬 그의 표정을 보며 보이지 않는 내 표정을 가늠할 수 있었다. 펜데믹으로 옆사람의 표정조차 읽기 어려운 세상에서 불특정 다수와 한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연결되었다는 확신은 낯설고도 반가운 감정이었다.
사실 도중에 팝송을 불러줬고, 게스트로 무려 하림님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글은 오롯이 정우성... 아니 나의 오랜 아이돌, 윤종신에 대한 헌정사로 남기고 싶어 굳이 뺐다. 극장에서 러브레터를 혼자 보며 시작했던 2021년을 홀로 찾은 윤종신 콘서트로 마무리하며 그의 노래로 여리고 서툰 마음에 위로를 받았던 많은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와 동시에 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찌질함조차 수용하고 승화시킨 성실한 예술가 덕에 나도 더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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