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텀프와 삼 남매를 간직하기 위한 글

2013년 8월부터 11월까지 나는 필리핀 두마게테에서 4개월 동안 봉사활동을 했다.

나는 8월 첫 주에 도착했고 같은 주에 센터의 강아지 스텀프가 새끼를 낳았다. 

스텀프는 3살 정도밖에 안된 어린 개였고 첫 출산이었다.

3마리를 낳았는데 처음엔 다행히 다들 참 건강했다. 

약 2주 정도 가까이도 못 가다가 그 이후에서야 이렇게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새끼들도 스텀프도 정말 대견했다.

새끼들은 정말 무럭무럭 자랐다.

나는 어쩌다 보니 개들 밥을 거의 전담으로 챙겨주며 강아지들과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솔직히 당시에 심신이 많이 지쳐있어서 더 많이 마음을 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무튼 녀석들은 정말 맑은 눈을 지니고 있었고 맑게 잘 자라주었다.

내게 그저 나무 쌓은 곳이었던 장소도 녀석들에겐 훌륭한 집이요, 놀이터가 되었다.

그런 녀석들 덕분에 내게도 센터의 더 많은 곳이 특별한 존재로 변해갔다.

나는 녀석들이 이렇게 내게 오는 그 순간이 정말 좋았다.

정말 이런 존재들이 있음에 감사했고 그런 존재들이 내게 다가온다는 것이 꿈같았다.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내게 큰 고민이 하나 생겼다.

밑에 사진에서 보이듯 3마리 중 한 마리가 갑자기 기력을 잃어갔다.

건강하던 녀석은 갑자기 걷지도, 서지도 못 했다.

그때부터 나는 강아지들에게 더 마음을 쏟았던 것 같다.

녀석들은 아직 어렸고 또 약했다.

당시에 내가 느끼는 나도 그런 면이 있었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녀석들은 나에게 큰 위로와 힘을 주었다.

그래서 나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주고 싶었다.

어느새부턴가 이가 끓기에 이렇게 씻겨주기도 하고...

아픈 녀석은 가끔 특별식(?)도 주고...

인애와 함께 항생제도 꼬박꼬박 챙겨줬다.

우연인진 모르겠지만 다른 두 녀석은 점점 센터의 온갖 곳을 다 돌아다니는데

아픈 녀석만 맨날 누워있는게 안타까워 내가 녀석을 안고 센터를 구경시켜 줬다.

그리고 저렇게 앞발을 손에 올리면 뒷다리로 일어서기에 그렇게 센터를 걷게 했다.

그 일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녀석은 그 이후로 기적처럼 건강해졌다.

홀로 묶여있는 스텀프는 답답해 보였지만 그래도 어미의 몫을 묵묵히 했다.

많은 순간 어미 개 스텀프가 안쓰러웠지만 그래도 참 행복해 보이는 개 가족이었다.

아프던 녀석이 건강해진 이후론 이 삼 남매에게 무서울 것이 없었다.

제일 건강했던 뚱뚱이가 통나무 사이에 껴 죽을 뻔한 걸 우연히 지나가던 나와 세진이가 구해준 적은 있지만...

그런 일을 제외하곤 별 탈 없이 센터를 장악해 갔다.

센터 짬타이거(?) 고양이에게 짖기도 하고...

나도 덩달아 행복했던 나날이었다.

수업을 갈 때, 올 때 이렇게 찾아오는 삼 남매 덕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정말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깨닫게 한 날이 왔다.

2013년 10월 20일.

녀석들은 많이 자랐다. 정말 잘 자랐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삼 남매를 원했다.

사실 잘 된 일이었다.

더 좋은 곳에서 더 잘 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이 너무 많이 들어 맘이 많이 아팠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녀석들은 우리의 마지막 날.

마지막 저녁 이렇게 작별 인사를 했다.

필연적이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나에게도 그랬지만 스텀프와 똘똘이에겐 더 그랬다.

그 빈자리가 우리에게 너무 크게 다가왔다.

그날 밤, 나는 교육 준비로 밤늦게까지 교무실에 있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오는데... 아뿔싸...

삼 남매와 자주 놀아주곤 했던 나와 세진이 방 앞에 똘똘이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똘똘이의 눈빛은 다른 남매들이 어딨느냐고 묻는 듯했다.

그리고 여전히 맑은 그 눈은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는데 한참을 함께 머물렀다.

그리고 추울까 싶어 신발과 옷으로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녀석이 잠을 청하는 걸 보고 나도 자려 했는데 눈물이 흘렀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렀다.

뒤늦게 내게 얼마나 이 강아지들이 힘이 됐는지, 내 맘을 많이 가져갔는지 새삼 깨달았다.

왜 항상 소중한 것들의 소중함은 잃은 뒤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지...

그 다음 날 새벽...

나는 이때 새벽 4-5시면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서 똘똘이가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었는데...

아뿔싸... 여전히 계속 찾고 기다리는 똘똘이...

새벽예배갔다와서 밤새 불안했을 스텀프와 똘똘이를 데리고 일부러 센터를 돌았다.

가슴 아프지만 더 이상 이 곳에 두 녀석이 없음을 확실히 알려줘야 될 것 같아서...

아니나 다를까 스텀프는 미친 듯이 센터를 훑었다.

그리고 밑에 마지막 사진처럼... 센터 문 앞 길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렇게 우리는 예기치 않은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날부터 나는 똘똘이와 스텀프에게 더 맘이 갔다.

특히 똘똘이...

똘똘이는 센터 사모님께서 직접 지으신 이름이다.

사실 다른 두 녀석은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적이 있지만

똘똘이는 비교적 무탈하게 커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던 아이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센터의 아이돌이 됐다.

치명적인 녀석...*

위에 사진들처럼 천진난만해 보이기도 했지만...

가끔씩 문득 녀석이 참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녀석의 눈이 내게 또 묻는듯했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 정말 많은 시간을 똘똘이와 함께 했다.

위에서 말했듯 나는 이때 뎅기열에도 걸리고 팀장으로 팀을 이끄는 게 생각보다 순탄치 않아 많이 지쳐있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개를 키우지만 필리핀에서의 시간만큼 내가 약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시간은 정말 좋았고 행복했지만 지쳤다는 점에선 그랬다.

그래서 똘똘이와 스텀프는 내게 더 깊게 위로를 줬던 것 같다.

알게 모르게...

그러다 어느덧 한국으로 돌아올 시기가 되었다.

산다는 것은 사람이든 개든 때때로 너무 가혹하다.

언젠가 똘똘이도 줄에 묶일 거라는 건 알았지만 솔직히 내가 가고 그러길 바랐다.

이기적인 생각인 줄 알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또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감성적인 생각임을 알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하지만 똘똘이의 활동반경이 너무 넓어져 어쩔 수 없이 그러셔야 했다.

줄에 묶인 첫날 똘똘이는 한참 동안 구석에서 저러고 있었다.

밥을 주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줄에 묶인 똘똘이를 보며 어쩌면 내가 사는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스쳤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똘똘이와 스텀프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렇게 똘똘이가 줄에 묶이고 딱 1주일 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과자를 줬다.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고... 언젠가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다.

물론 다시 오겠다는 이유에는 더 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이 두 녀석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렇게 마지막 밤, 마지막 산책을 했다.

그렇게 2014년이 되었고 이번 여름 나는 많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필리핀으로 향했다.

가자마자 날 반기는 똘똘이와 스텀프...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녀석들에게는 여전히 고맙고 미안했다.

똘똘이는 어느새 어엿한 성견이 되었다.

이제 외양으론 누가 어미고 자식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사실 스태프로 역할을 받아 간 거라 개인 시간이 정말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오매가매 틈날 때마다 녀석들과 조금씩 시간을 보냈다.

똘똘이는 예전에 비해 힘이 너무 세져서 컨트롤하기 힘들기도 했지만...

여전히 녀석이 달려올 때면 나는 설레고 행복했다.

스텀프와도 오랜만에 공놀이를 했다.

어찌나 격하게 놀던지 공이 터져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함께 할 수 있음이 진심으로 행복했고 감사했다.

하지만 어느덧 또 시간이 흘러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약속을 지켜 감사했지만 또 한편으론 약속을 지켜 더 미안하게 됐다.

그래도 다들 잘 지내고 있음을 봐서 안심이었다.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니까...

그때까지 녀석들도 이 자리에 머물러주길 바라면서...

그 인사가 2달 전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똘똘이와 스텀프가 나란히 하늘나라로 갔단 얘기를 들었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

처음 이들을 봤을 때 내게 이렇게 힘이 되어주고 소중한 존재가 될 줄 정말 몰랐는데... 

얼마 전 봤던 그 모습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나름대로 너흴 위한다고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난 참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너희 소식을 듣고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그래도 너희를 만나 정말 행복했고 많이 배웠어...

진심으로 고마웠어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좋은 곳에서 행복하길 바랄게...!!!!!

언젠가 다른 두 녀석과 다 같이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