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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_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기행/국내 2022. 9. 9. 18:12
짧은 여름휴가 뒤 더욱 세차게 휘몰아치는 일들 덕에 금방 주말을 맞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믿고 보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이 사랑하는 이중섭 화백을 주제로 꾸며져 들뜬 마음으로 다녀왔다. 어쩌다 보니 전시나 공연을 혼자 보는 게 습관처럼 되었는데 이번엔 지속적으로 손을 내밀어 준 고마운 친구들이 있어 함께 봤다. 덕분에 여운을 같이 나눌 수 있어 즐거웠다.
이번 전시는 고 이건희 회장이 기부한 이중섭 화백의 작품 90여 점에 국립현대미술관의 기존 소장품 10점을 더해 총 100여 점으로 구성됐다. 나처럼 이전에 다른 이건희컬렉션 전시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반갑게 마주할 작품도 있다.
이중섭 화백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근대사의 비극을 감내하며 후세에 감동과 위로를 주는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이다. 그런 그의 작품 세계를 1940년대와 1950년대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먼저 1940년대에 작업한 연필화와 엽서화를 둘러보며 그의 순수와 고독을 함께 느꼈다.
한국전쟁으로 제주, 통영, 서울, 대구 등 다양한 곳으로 거처를 옮기며 끝끝내 그려 낸 1950년대의 작품들과 은지화, 편지화도 볼 수 있었다.
새와 닭, 소 등 동물과 아이들로 은유한 삶은 시적인 그림이 되었다.
많은 화가들이 그랬듯 이중섭 화백도 출판미술을 통해 다양한 그림을 남겼다. 그의 지난한 삶과 별개로 밥벌이조차 창작물에 도달한 어떤 예술가의 격이 멋지고 부럽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 불태웠던 작가혼은 담뱃갑 속지에 오롯이 새겨졌다. 다양한 은지화를 볼 수 있는 것도 뜻깊었지만 구상 시인이 묘사한 이중섭의 의지가 큰 울림으로 전해졌다. 스스로 예술가가 될 깜냥은 되지 못할지언정 주어진 삶과 글감을 따라 성실히 걸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가족과 아이에 대한 회화도 많았는데 여러 작품에 가족에 대한 그윽한 사랑이 묻어나 깊은 감동을 줬다. 동시에 그의 고달픈 인생사에 대한 인지에 기인한 먹먹함을 느꼈다. 덕분에 그는 세월을 초월하는 예술가가 됐고, 우리는 작품에서 영감을 얻지만 많은 상처를 남긴 뼈아픈 시대가 뒤늦게 야속하다.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는 편지화란 작품이 됐다. 글과 그림이 그리움을 담아 전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배우며 사랑이 주는 짙은 여운을 느꼈다.
올해 제주도 이중섭미술관에서도 이중섭 연보를 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번 전시의 연보는 같은 삶임에도 다르다. 어떤 순간들을 선별하여 편집하는 것만으로도 이해나 오해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연보를 보다 우연히 부인과 두 아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일자가 내 생일임을 알게 되었다. 가수 윤종신의 '1월부터 6월까지'라는 노래에선 어느 커플이 이별한 날이었는데, 그런 날 태어나 내 청춘이 그토록 서글펐을까? 자조적인 농담과 별개로 앞으로 내 생일에 그가 조금 더 떠오를 것 같다. 연보 마지막에 적힌 이번 특별전의 개최 일자를 보다 문득 예술은 향유로 생동함을 깨달으며, 그 끊임없는 여정의 일부분이 된 것 같아 감사했다.
마지막 풍경이란 이름으로 전시된 말년의 그림들이 대미를 장식했다. 힘을 뺀 경지에 이른 작품들이 씁쓸함과 허무를 느끼게 하면서도 삶의 정수를 담은 것 같아 묘했다.
역시 이번 전시도 명불허전이었다. 특히 곳곳에 남은 가족들의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 이중섭 화백은 굴곡진 삶에도 끝끝내 예술혼과 가족애를 포기하지 않았다. 열정과 사랑을 지켜낸 의지가 참사랑으로 느껴져 울컥울컥했다. 덕분에 그의 그리움은 여리면서 강인하고, 성숙하면서 천진하게 감동을 주는 그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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