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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Love letter), 1995문화생활/영화 2021. 1. 2. 01:34
어느새 또 새해가 밝았다. 소리 없이 높이 쌓인 강원도의 함박눈처럼 그새 나이를 꽤나 먹었다. 연말연시라 할 것도 없이 지내고 있지만 2021년 첫날만은 아주 특별하게 간직될 것 같다.
그건 오롯이 영화 '러브레터' 덕분이다. 1995년 작품인 러브레터는 일본 문화 개방 후 1999년에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개봉했던 작품이다. 나는 수능을 마친 겨울에 이 영화를 처음으로 접했다. 당시엔 나이가 나이인지라 회상하는 장면 속 아역배우들에게 더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다. 아역배우 사카이 미키와 카시와바라 타카시가 함께 출연한 '하쿠센 나가시'란 드라마까지 찾아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영화에 대한 정확한 감상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확실한 건 정말 큰 감동을 받았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더미 같은 순수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그때의 내가 품고 있던 마음이 영화에 투영됐던 것 같기도 하다. 무튼 덕분에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주어지는 자유롭고 무료한 시간에 이와이 슌지 감독의 여러 작품을 이어 볼 수 있었다.
러브레터는 한국에서 워낙 사랑받는 영화라 그런지 그동안 수차례 재개봉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었는데(?) 코로나 시국임에도 영화관에서 꼭 한번 보고 싶던 영화라 욕심이 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화관을 찾아보니 거짓말처럼 1명도 예매를 하지 않은 곳이 있어 객기로 영화관에 다녀왔다. 결과적으로 나 외에 한 분 더 계셨지만...*
10년이 넘는 세월 뒤에 다시 본 영화는 역시나 감동적이었다. 이전엔 후지이 이츠키들의 순수한 사랑이 강하게 마음에 남았는데, 이번엔 그 못지않게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극중 와타나베 히로코가 사랑으로 사랑을 이겨나가는 과정이 참 서글프면서도 감동적이었다. 막연하게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모든 사랑에 대한 담론이고 순수한 시절에 대한 뼈저린 그리움이었다.
방향과 상관없이 대부분 엇갈려온 서글픈 마음의 역사를 두고 가끔 서브 남주 재질이라고 자조하곤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엇갈림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곱씹었다. 지양하고 싶지만 만약 또다시 그런 엇갈림이 찾아온다면 나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혹은 누군가의 마음이 나에게 닿지 않는다고 슬퍼하기에 앞서 그 감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지 기억하고 싶다.
현실에선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곁에 두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람이 사랑으로 이어지긴 어렵다. 영화를 통해서나마 그 모든 마음이 사랑이라면 시간과 죽음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걸 되새겼다. 한때는 영원한 회귀점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조차 알고 보면 스쳐가는 지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때로는 엇갈림으로 완성되는 사랑도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마음에 담아본다.
P.S.
겨울철 불후의 명곡, A Winte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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