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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_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 빈미술사박물관 특별전문화생활/전시 2023. 3. 10. 00:12
전시와 공연 등 문화생활을 즐기지만 평소보단 의욕이 적은 시기였다. 그럼에도 소중한 인연들이 나를 좋은 길로 이끈다. 지인이 초청권 하나가 남았는데, 혼자 갈만한 사람으로 내가 바로 떠올랐다며 표를 줬다...* 고마운 마음으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 빈미술사박물관 특별전'을 보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기간이 연장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전시인 데다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아 그런지 현장 발권을 기다리는 줄이 전시 오픈 전 아침 일찍부터 길었다. 역시 나 포함 우리는 근면성실한 민족이다.
초대권 덕분에 조금 기다려 바로 입장했다. 3천 원을 내고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빌리거나, 앱으로 같은 가이드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빌렸는데 기대보단 여러모로 부실한 느낌이었지만 관람에는 유용했다.
왕족의 초상화와 갑옷으로 시작하는 왕가의 엄청난 소장품을 보며 약간 유럽 여행 온 듯한 기분을 느꼈다. 세심하게 준비된 동선과 안내문 덕으로 그 시대에 대한 이해도 키울 수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아우르는 작품들 자체의 아름다움도 좋았다. 문득 제국주의에 대한 작은 고민도 떠올랐지만 사실 지금도 고도화된 착취가 실존하고, 나 또한 핍박과 수혜를 동시에 입고 있다. 이렇게 기대보다 다양한 작품들을 접하며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셀'이라는 작품 설명을 읽으며 문득 커피소년의 '장가갈 수 있을까'라는 명곡을 떠올리기도 했다...*
현대 사회의 기업들도 '메세나'란 이름으로 여러 문화 예술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모든 일엔 빛과 그림자가 있지만 예술이 두고두고 많은 생애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매개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합스부르크 왕가와 오스트리아 빈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며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삶의 형태를 희미하게나마 엿본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말 많은 왕족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특히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이다. 궁정 화가가 포착한 5살 소녀가 세월을 넘어 눈앞에 서 있는 듯 생생했다.
그 외에도 여러 작품이 감탄을 자아냈다. 역시 실제로 보면 작품 한편에 그려진 강아지나 행인처럼 큰 존재감을 발산하는 작은 부분이 있다. 실제로 겪어야 깨닫고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반갑다.
파울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얀 브뤼헐 1세의 ‘꽃다발을 꽂은 파란 꽃병’ 등 거장이 담은 생명력 혹은 거장의 생명력 그 자체가 느껴지는 명작들이 이어졌다. 그런 작품을 마주하면 왠지 조금 진이 빠지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마음이 채워진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위선자로서 불필요한 살생은 가슴을 무겁게 한다. 화가의 시점에서 그려진 사냥터 동물들의 모습이 생과 사를 넘어 모두 피해자처럼 보인다.
다채롭게 당대를 엿볼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어떤 왕족들은 점점 낱낱의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도 신기했다. 특히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에서 국모로 꼽힐 정도로 가장 사랑받았던 여왕이라고 한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위엄이 넘치는 초상화 뒤에 남편과의 사별 후 검은 옷을 입은 또 다른 초상화가 이어진다. 사랑을 잃은 그녀의 슬픔과 실의가 여실히 전해졌다. 오해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는 일은 결국 서로를 사람답게 만들지 않을까?
'마리아 크리스티나 여대공의 약혼 축하연',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해 프란츠 2세, 나폴레옹 1세 그리고 '시시'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엘리자베트 황후까지 그림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전시품은 조금 뜬금없지만 조선의 투구와 갑옷이다. 험난했던 정세 속에 선조들의 애환이 느껴지는 듯하다. 더불어 늘 그렇듯 여전히 혼란스러운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참 많은 것 같다. 의외의 마무리라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다. 기대 이상의 감동과 뜻밖의 배움이 있던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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