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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케냐(Kenya)_투르카나(Turkana)
    기행/해외(아프리카) 2021. 1. 21. 00:33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로 케냐 투르카나에 가게 됐다. 아부다비, 나이로비를 경유하며 이동 중에 3년 넘게 백팩을 지켜준 라오스에서 선물 받은 소원 팔찌가 끊어졌다. 미처 인사도 못하고 보내 아쉬웠다. 쏙디...*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도착한 투르카나는 지난번에 왔을 때와는 참 달랐다. 말라있던 라가에 물이 흐르고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이 흐리다.  

    세상에 이런 강이

    이번엔 처음으로 일종의 메인 PM을 맡게 됐다. 사소한 일정부터 시작해 많은 것들을 주도적으로 조율해야 했다. 나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권한이 주어진 만큼 책임도 컸다. 이런 상황이 아직은 생소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다행이었던 건 이번 출장지가 한 번 와봤던 곳이라는 점이었다. 괜히 많은 것들이 반가웠다. 다시 찾은 블랙골드호텔에선 집과 같은 편안함도 느껴진다. 무엇보다 작년에 함께 동고동락했던 현지 동료들을 다시 볼 수 있어 정말 기쁘고 든든했다.

    이제는 익숙한 블랙골드호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던 작년보다는 나을 거란 기대를 안고 일정을 시작했다. 지난해에 비해서는 나았지만 얼마 전까지도 여전히 가뭄으로 인한 가축들의 죽음이 이어졌다고 한다. 비가 온 이후로는 동물들에게 수인성 전염병이 돌고 있었다. 

    살아남는 게 당연하지 않은 땅이다. 그럼에도 이 땅의 많은 생명이 묵묵하고 강인하게 견뎌내고 있었다. 마주하는 모든 목숨이 참 고맙고 값지다. 삶이 어려움으로 가득 차더라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배웠다.

    워낙 넓은 지역이라 마을에서 마을로 가는 데 편도로 2~3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하루 종일 힘든 일정을 마치고 난 뒤, 매일 저녁 머리를 맞대고 다음 날 동선을 고민했다. 지친 티가 범람할지언정 끝까지 내색하지 않던 현지 동료들이 참 고맙다.

    투르카나 어디까지 가봤니...?

    모든 일이 그렇지만 역시나 이곳에서도 뜻하지 않은 시련들이 많았다. 나를 비롯해 한정된 시간과 자원으로 먼 땅을 찾은 사람들이 특히 더 예민했다. 크게 보면 같지만 어떻게 보면 각자 다른 목적으로 왔기에 때로 서로의 사소한 다름에서 큰 오해가 자라나기도 했다.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을 중재하는 역할이 처음은 아니지만 언제나 그렇듯 쉽지 않았다. 유난히 황량해 보이는 아프리카 두메산골에서 많은 순간 고독을 곱씹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와서 허비할 시간은 없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유독 비가 많이 오던 출장이라 쫄딱 젖기도 했지만 투르카나답게 해가 뜨면 금세 40도가 넘어 목이 벌겋게 익곤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지치게 했지만 돌이켜 보면 이 또한 결국 그 시기를 견디게 도왔다.

    삿된 상황과 생각 속에 잠겨 있을 때, 정말 중요한 것들은 그런 게 아니었다. 아주 작은 아이조차 입에 담지 않는 군말을 마음에 담는 어른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다. 사실 대부분의 고민과 어려움들이 아이들이 매일 같이 드는 제리캔의 무게에조차 미치지 못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심각한 영양실조를 겪는 아이들이 많았다. 한 아이는 작은 심장이 뛰는 게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다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없이 아이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초점을 잃은 눈빛이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나중에 투르카나를 떠나는 날,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금만 빨리 왔더라면 한 아이가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제 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아이를 위한 묵념뿐이었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의 다른 이름은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일이라는 걸 많은 순간 깨닫는다.

    아프리카 밤하늘은 정말 아름답다. 특히 이렇게 외진 곳으로 나오면 더 생생하게 별빛을 누릴 수 있다. 정말 쏟아질 듯 넘실대며 빛나는 별들을 보며 우리도 하나하나 저렇게 빛나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우연찮게 그때 이어폰에서 센티멘탈 시너리의 '별 쏟아지던 밤'이 흘러나와 소름 돋게 좋았다. 거짓말처럼 Coldplay의 'A sky full of stars'로 이어져 핸드폰이 참 기특했다. 현지에서 만난 아이 중 시오가 별을 보면 걱정과 근심이 사라져 매일 자기 전에 별을 보고 그대로 잠든다고 했는데 그 말을 100%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늘 가득 별이 내려 무수히 쏟아지던 밤...*

     

    아주 소소한 기쁨이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이번 출장에서 운 좋게 챔피언스리그 유벤투스 vs 토트넘 전이 시간대가 맞고, 호텔에서 스포츠 채널 수신이 가능했다. 덕분에 골을 넣는 우리 흥을 볼 수 있었다. 손흥민 선수가 득점 장면 보고 다음 날 일정을 위해 잤다. 나중에 보니 결국 역전패했더라. 케냐 사람들은 대부분 축구를 좋아해 프리미어리그에 응원하는 팀이 하나씩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인 동료가 다음 날 이른 새벽부터 놀렸다. 토트넘 완야마도 케냐 사람이라고 항변...*

    여느 때와 비슷하게 해가 뜨기 전부터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광활한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은 묘한 힘을 준다.

    척박한 땅에 피운 꽃도 찰나의 미소와 두고 쓸 응원을 선물했다.

    해가 뜨면 날이 덥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일과를 시작한다. 제 몸만 한 나무로 숯을 만드는 아이들은 이곳에서 너무나 흔한 풍경이다. 이방인에겐 마음 아픈 장면이지만 사실 나는 가슴 시릴 자격조차 없다. 다만 내 시간과 노력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일용할 물을 얻기 위해 매일 같이 긴 줄을 이루고, 깊은 땅을 파내려 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누리는 일상의 편의는 누군가의 권리를 착취한 결과물이 아닌지 스스로 묻게 된다. 

    평생을 다 바쳐 이룬 염소 떼가 난생처음 겪는 이상 기후로 대부분 죽었다는 노인 앞에서 나는 떳떳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이곳에 보탬이 되겠다며 비행기를 타고 왔다. 영문도 모르고 평생 쌓아온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어르신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최소한 죄송하다는 얘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후회가 된다.

    여러모로 척박한 황무지였지만 그럼에도 희망은 있었다. 특히 아이들의 존재 자체가 희망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지금 여기서 난 행복해요'란 노래를 부르던 아이와 길거리에 버려졌지만 맘씨 좋은 할머니와 함께 살며 빼곡히 쓴 노트를 보이던 아이 모두 나에겐 스승이었다.

    전례 없이 총체적 난국이었던 출장이었지만 모든 일을 마치고 돌이켜보면 어려움의 원인이라 생각되는 것들조차 모두 끝으로 가기 위한 계획의 일부였던 거 같다. 그 시간을 함께한 모두가 있었기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동료이자 형제가 되어준 많은 현지 사람들 덕이 가장 컸다.

    덕분에 부족하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으로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야말로 하얗게 불태우고 나이로비에 오자마자 장염과 몸살로 완전히 몸져누웠다.

    투르카나에서 말문이 막혔지만 말을 걸었고, 갈피를 잡을 수 없기에 그저 걸었다. 참 역설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한 역설 중 가장 큰 것은 절망 중 희망을 보았다는 것이다. 역설의 범람 속 나는 무엇이 되어가는 중일까 묻고 또 묻게 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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