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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케냐(Kenya)_투르카나(Turkana)
    기행/해외(아프리카) 2018. 3. 20. 12:17

    케냐에 처음으로 다녀오고 얼마 되지 않아 급작스레 한번 더 케냐에 가게 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정의 행선지는 케냐에서도 북쪽 국경에 맞닿은 투르카나(Turkana) 카운티. 원래 일종의 반사막 지형이지만 최근 몇 년 간 심각한 수준의 가뭄과 기근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수도 나이로비와는 전혀 다르게 후덥지근하다 못해 숨이 막히는 공기가 나를 둘러쌌다.

    이어 나를 마주한 것은 가뭄으로 말라버린 강줄기와 수십여 구의 사체가 쌓인 염소 무덤이었다. 이 마른 강은 현지어로 '라가'라고 부른다. 비가 왔을 때 한시적으로 흐르는 강이긴 하지만 이렇게 깊은 속까지 온전히 말라버린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또 보통 목축에서 나오는 부산물들로 살아가는 투르칸족에게 가축의 죽음은 곧 가족의 위험을 의미한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그득한 사체 썩는 냄새 속에 죽음을 가까이 본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살아남은 염소들은 이미 고장난 식수펌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보건소로 모였다. 지역보건소에서 영양실조로 판별된 사례에 한해 영양키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 작동되는 식수원도 있었다.

    하지만 보통은 이렇게 전보다 훨씬 먼 곳으로 물을 구하러 가야 했다. 하루를 온전히 물 뜨기에 쓴다는 소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부끄러움과 무기력함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매일 별을 보며 잠들고, 또 해가 뜨기 전에 하루를 시작했다. 정신없이 바쁘고 지친 와중에도 별과 해는 묘한 위로가 됐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매일 뜨는 태양을 떠올렸던 것도 같다. 어쩌면 매일 뜨는 태양도, 이렇게 매일을 살아내는 투르카나 사람들도 이미 기적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다만 그 생각이 내 편협이나 무지의 면죄부가 되지 않길 바랐다.

    보통 그동안 내가 겪은 아프리카 하늘은 맑거나 비가 오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투르카나 하늘은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 때로는 이렇게 건조한 듯 화난 얼굴로 모래폭풍이 휘몰아쳤다.

    또 언젠가는 이렇게 더 나은 내일에 대한 약속 같은 예쁜 무지개로 힘을 주었다.

    그렇게 마르고 강퍅한 땅에서 20여 일을 함께 보냈다. 물은 생명이라는 말을 이토록 실감한 적이 있을까. 기적처럼 내가 돌아오기 며칠 전 비가 왔다. 온 땅이 적셔지고 채 하루도 되지 않아 사막 같던 땅에 생명이 감도는 걸 볼 수 있었다.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이런저런 답을 하곤 했다. 투르카나에서의 시간은 그 질문 자체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이어졌다. '참 배부른 질문일 수 있겠구나... 살 수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지겠구나'. 부끄럽게도 그곳에 준 것은 거의 없이 또 너무 많은 걸 받아버렸다. 특히 절망을 수용하고 그럼에도 살아내는 많은 사람의 삶에 대한 의지가 내 안에 남았다. 어쩌면 그걸 우리는 희망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마지막 날에도 해가 떴고, 조금은 무심하게 느껴지는 그 반복이 다행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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