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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부룬디(Burundi)_루타나(Rutana)
    기행/해외(아프리카) 2021. 8. 12. 22:47

    언제나처럼 열심히 출장을 준비하고 있던 와중에 뜬금없이 이직이 확정되었다. 월요일에 합격 소식을 들었는데 다가오는 일요일이 출국일이었다. 얼떨떨한 채로 갈림길에서 결정을 내리니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정신 차리니 공항에 와있었다.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끝은 늘 급작스럽게 느껴진다.

    태국 방콕과 케냐 나이로비 그리고 르완다 키갈리를 경유해 부룬디로 향했다. 경유와 대기가 긴 항공편이라 24시간이 넘게 걸렸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비행기에서 책 '서른이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를 읽고 몇 번의 지연까지 겪은 뒤에야 마침내 부줌부라에 도착했다. 도착 비자를 받고 나왔는데 수하물 중 하나가 끝까지 보이지 않는다. 분실 신고를 하고 나서야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부룬디(Burundi)는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내륙 국가이다. 크기는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친 정도에 불과하지만 위치상 아프리카의 심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 수도였던 부줌부라(Bujumbura)가 여전히 가장 큰 도시이다. 현재 수도인 기테가(Gitega)는 우리의 세종시와 비슷한 것 같다. 르완다, 탄자니아, 콩고민주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특히 르완다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언어를 비롯해 국토 면적과 인구수까지 유사하다. 후투족과 투치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 구성조차 비슷하다. 식민 지배를 받던 시기에는 서로 합병되기도 했고 각자의 지리멸렬한 내전에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기도 하다. 역사적인 유사성과 별개로 정치적인 불안과 경제적인 어려움은 차이가 난다. 부룬디 국민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기후 변화 및 자연재해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발을 내디딘 국가가 르완다였는데, 마지막 출장이 부룬디라 뭔가 더 뜻깊었다.

    부룬디 사무실에서 시큐리티 브리핑을 받고 마지막까지 퍼밋 하나를 기다리다 현지시간으로 오후 3시 반이 되어서야 극적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육로로 3시간이 걸려서 루타나에 도착했다. 비가 많이 오는 가운데 마침 정전이 된 숙소, Sky Lodge의 첫인상은 귀곡산장(?) 느낌이었다. 선발로 와 고생 많이 한 동료와 현지 직원들을 만나 얘기하고 이렇게 또 한 번의, 동시에 나의 마지막 출장이 시작되었다.

    간밤에 벌레가 많이 보이고 천장이 뚫린 구조라 에티오피아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다행히 크게 물린데 없이 날이 밝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일상적인 장소와 모든 순간이 괜히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번 출장지인 루타나(Rutana)는 부룬디 남부에 위치해 있다. 면적은 서울특별시의 3배에 달하지만 인구수는 40만 명이 조금 넘어 시흥시와 비슷하다. 국경에 가까운 곳으로 부룬디에서도 가장 열악한 지역 중 하나였다. 특히 기후 변화의 여파로 건기가 길어지고 강수량이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건기에는 가뭄으로, 우기에는 홍수로 인한 토양 유실로 주민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늘 그렇듯 내가 할 수 있는 건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걸어내는 일뿐이었다. 길은 언제나 드문드문 끊어진 듯 끝끝내 이어지곤 했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라는 문장에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되뇌며 가리어진 길을 조금씩 밝혔다.

    병원, 학교, 시장 등 많은 곳을 다니며 누군가의 삶을 들추곤 했다. 덕분에 인생의 보편성을 통감하면서도 어떤 이야기는 오래도록 남아 자꾸만 되새기게 한다. 내 안에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들이 켜켜이 쌓이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의 이름도 결국 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어찌 보면 단조로운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다가도 때때로 새삼 내가 마주하는 아프리카의 하늘과 나무,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눈부시게 아름답게 느껴지곤 한다. 어쩌면 다시는 이런 시간을 겪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혼자 울컥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카르페 디엠을 홀로 되뇌고 다짐했다.

    아프리카에서조차 일 때문에 홀로 자괴감을 느끼거나 기 싸움을 벌이게 되는 때가 있다. 동시에 이 먼 땅에서도 박애와 희생으로 그 모든 걸 이겨내곤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 속 입장이 다른 사람의 배려를 받는다는 건 참 기적 같은 일이다. 어떤 면에선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현지 주민들과 직원들을 대변하고 지키는 역할이 참 중요하다는 걸 끝까지 새길 수 있었다. 매번 출장에서 겪는 농도 짙은 어려움은 다른 깨달음을 주곤 한다. 이번에 배운 것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협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것이라는 점과 나에 대한 존중은 스스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같은 곳에서 봐도 매일 다른 하늘을 보며 많은 위로를 얻곤 한다. 그중 군 시절을 견디게 해준 강원도 하늘, 대학 시절 해외봉사의 어려움을 위로해 준 동남아 하늘처럼 몇몇 하늘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있다. 출장의 피로와 고독을 달래준 아프리카의 수많은 하늘들도 그렇게 내 안에 간직될 것 같다.

    출장 중에 누적된 피로로 몸살 기운이 확 올라오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부룬디는 국토 전역이 말라리아 위험지역이었다. 갑자기 두통이 심해지고 메스꺼운데 근육통까지 오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병원에 들를 일이 있어 갔다가 말라리아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음성이었다.

    땡스 갓...*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 보니 일정이 금세 막바지를 향해 갔다. 이번에도 타고난 일복과 인복 덕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닌 내가 누군가와 함께라면 무어라도 해내게 된다.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이유는 참 많지만 그중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이다. 운 좋게도 그동안 직접 이 대륙에 와서 은하수처럼 밝은 별들을 헤아릴 수 있었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 눈빛조차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아이들은 객체가 아닌 자기 삶의 주체로서 다가왔다. 이제는 제 몸만한 벽돌을 나르는 아이가 마냥 불쌍하다기보다는 그 어떤 어른보다 강인하고 대단하다는 걸 안다. 동시에 얼마나 위태롭게 버텨내는지도 아주 조금은 가늠한다. 해맑게 주고받던 인사와 눈짓들이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아이들의 순수는 많은 순간 위로가 되어주었다. 나도 모르게 튼 입술을 염려해 주던 온기를 기억한다. 많은 어른이 이미 잃어버린 맑은 마음은 큰 힘이 있다.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라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때가 타버려 무엇이 중요한지도 잘 모르는 어리석음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지친 가운데 갑자기 비가 내려 공기조차 싸늘해진 날이 있었다. 아이들이 추워하는 걸 보고 드라이버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보닛에 손을 올려도 된다고 말했다. 그 찰나 덕에 나는 영원히 간직될 웃음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무리 힘들고 나빴던 순간도 끝에 다다르면 미화 혹은 승화되곤 한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겪은 모든 어려움은 승화에 더 가깝다고 믿는다. 새삼 모든 것에 감사하며 마지막 여정을 갈무리했다. 현지 직원 중 끝까지 동행해 준 치자와 사랑한다가 아닌 '싸랑한다'를 서로 외치며 공항에 도착했다. 13일의 금요일인 동시에 추석이었다. 많이 배려해 준 한국 동료들, 헌신한 현지 직원들 덕에 마지막 출장이 무사히 저물었다.

    앞으로 또 어떤 삶이 이어질지 모르지만 아프리카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걸 안다. 특히 끝은 각별하게 남겠지. 익숙하게 누려왔던 편의가 당연하지 않음을 여러 출장 덕에 깨닫곤 했다. 마주한 수많은 얼굴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참 많았다. 그럼에도 기울어진 세상을 꿋꿋이 살아낸 이들과의 만남은 내게 힘이 되는 빚으로 남았다. 무라코제...* Murak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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