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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이탈리아 기행_5일차(2)_피렌체_아카데미아 미술관·다비드상(feat.스탕달 신드롬)
    기행/해외(유럽) 2019. 3. 3. 23:52

    11시 30분쯤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a dell'Accademia)에 도착했다. 이름 그대로 원래 미술 교육 기관으로 쓰이던 곳이라고 한다. 겉모습은 명성에 비해 소박하게 느껴졌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11시 45분 입장으로 예매해두어 거의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함께 예매해둔 우피치 미술관 표도 미리 받았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다양한 조각과 회화 작품의 '원본'을 소장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잠볼로냐(Giambologna)의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Rape of the Sabine Women)였다. 로다 데이 란치에서 본 건 모조품이고 이곳에 진품이 있다.

    정교함으로 따지면 모조품도 못지않았으나 왠지 진품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이어 본 작품은 주로 회화였다. 미술에 대해 잘 몰랐지만 재밌는 점이 많았다. 먼저 실제로 본 그림들은 대부분 '디테일'이 경이로울 정도로 섬세했다. 또 생각보다 크거나 작았고 주로 큰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같은 주제여도 작가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각양각색이었다. 다소 얕은 감상일 수 있으나, 오히려 잘 모르기에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마침내 저 멀리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가 만든 다비드상(David)의 진품이 보인다. 멀리서도 존재감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이미 로자 데이 란치,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모조품을 봤음에도 정말 설렜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석상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다비드상을 보고 든 생각은 딱 이거였다. 미켈란젤로는 천재다. 진짜 불후의 천재다.

    로자 데이 란치에서 보았던 모조품이 '정교함으로 인한 신기함' 정도였다면 오리지널 다비드는 소름 끼칠 정도로 생명력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발을 내딛고 골리앗에게 향할 것 같았다.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Aura)'의 실체를 영접하는 기분이었다. 

    다비드가 한 손엔 돌을, 다른 손으론 가방같이 생긴 투석기를 쥐고 있는 것도 직접 보기 전엔 미처 몰랐다.

    어느 측면에서 보아도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왠지 석상의 고민 혹은 불안이 느껴졌다. 동시에 젊음의 패기, 강인함도 느껴졌다. 하나의 작품이 아닌 한 주체로 다가왔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넋 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보는 측면과 순간에 따라 매 순간 낯설고 새로운 느낌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손의 힘줄을 알아봤을 땐 소름이 돋았다.

    그제서야 팔의 힘줄을 비롯해 다른 세부세항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늘진 뒷모습조차도 남다르다.

    봐도 봐도 느껴지는 생명력...*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다비드와의 만남을 기념하고 싶어 사진을 남겼다. 나름 자세를 따라했는데 어정쩡하게 나왔다.

    그렇게 셀럽 실물 영접을 뒤로 한 채, 수많은 석상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비드상을 본 직후라 감동은 덜했지만 분명 굉장한 작품들이었다.  

    약간 의아했던 이 작품에선 왠지 해학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루이지 팜파로니(Luigi Pampaloni)라는 작가가 1827년 만든 개와 소년(Boy with a dog)이라는 작품이 좋았다. 덕분에 따뜻한 한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다 둘러본 뒤, 나오며 봤던 파치노(Pacino di Bonaguida)의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도 기억에 남는다. 기독교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았는데 이 작품은 에덴동산에 뿌리를 둔 나무의 가지에 예수님의 생애를 담았다. 어떻게 보면 매우 친절한 표의문자로서 기능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나오고도 한동안 다비드의 인상이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스탕달 신드롬은 19세기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피렌체에 위치한 산타크로체 교회에서 조토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느낀 순간적 황홀경에서 유래한 말이다. 나 또한 피렌체에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오늘 마주한 다비드상을 보고 황홀경을 넘어 파괴 욕구를 느끼는 다비드 신드롬(David syndrome)이란 것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그런 충동은 느끼지 못했다. 다만 초월적 범주의 명작을 보고 느낀 감동을 되새기며, 가능하다면 언젠가 미켈란젤로가 밟았던 극치의 끄트머리라도 이르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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