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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강화_강화고려궁지·천주교 인천교구 강화성당·용흥궁 공원·용흥궁·대한성공회 강화성당(강화읍성당)·강화풍물시장·아송·다락 게스트하우스
    기행/국내 2022. 12. 1. 00:53

    반려견, 사랑이 형이 한 주간 유독 기운이 없고 갑자기 많이 아파했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수액을 맞고 나서 우리 형은 도리어 호흡이 더 가빠져서 왔다. 그나마 다시 무언가 먹기 시작해 조금 안심했다. 오전 내내 침대 위 기력 없이 누워있는 사랑이에게 붙어 주무르고 뽀뽀하며 귀찮게 하니 결국 나에게 '왕왕왕' 한소리 하셨다. 그 꾸짖음이 얼마나 반갑던지... 하필 미리 예약해 두었던 차 점검을 받으러 인천에 가야 했다. 함께 잡아뒀던 1박 2일 강화도 여행을 갈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갔다. 요즈음 일터에서 가벼운 번아웃을 느끼고 있었고 사랑이가 이토록 힘들어하는 걸 보고 있는 게 버거웠기에 재충전 후 당분간 사랑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점검 뒤 짧은 여정을 시작한 강화고려궁지는 뭔가 쓸쓸했다.

    몽골군의 침입에 대비해 고려가 왕도를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뒤 39년 동안 왕궁이 있던 터라고 한다. 날이 좋고 가을이 완연해 풍광은 아름다웠으나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 조금 어수선했다.

    보고 내려오다 우연히 천주교 인천교구 강화성당을 봤다. 참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궁지에서 걸어서 용흥궁 공원과 용흥궁까지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용흥궁은 조선의 제25대 왕인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 잠저이다. 원래는 초가집이던 것을 철종이 왕이 된 뒤, 당시 강화유수가 큰 기와집으로 증축해 '용이 흥하게 된 궁'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했다고 한다. 철종의 기구한 삶과 다르게 평범한 한옥이었다.

    유명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이 바로 옆에 있다. 강화읍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무려 1900년에 지어진 건물은 서양과 동양의 양식이 결합해 오묘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겉은 한옥 같지만 내부는 성당의 시퀀스를 자아낸다. 가을 하늘과 마주한 처마와 독특한 조화 속 느껴지는 고요와 평화가 인상적이었다. 가족, 사랑이 형의 건강과 평안에 대한 기도를 진심으로 드렸다.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해 강화풍물시장에 잠시 들렀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아송이라는 근처 식당에 갔다. 술 한잔 걸치는 현지인들이 떠들썩한 가운데  홀로 조용히 물회를 먹었다. 사실 식욕보다는 계속 불편한 마음이 컸지만 미련하게 그러고 있었다.

    다소 외진 곳에 위치한 숙소로 가는 길에 플러스마트에 들러 주전부리 사서 가니 거의 7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밤길이 생각 이상으로 깜깜해 조금 무서웠다.

    다락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을 예약했는데 방이 여러 개고 각자 이름이 달랐다. 하루 묵게 된 방 이름이 마침 '사랑'방이다. 토속적인 강화도의 오래된 가옥을 살려 이렇게 멋진 숙소로 꾸며 두셨다. 반갑게 달려드는 개, 고양이들의 환영이 고마운 동시에 자꾸만 사랑이 형을 떠올리게 했다. 

    짐을 풀고 숙소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덴마크에서 온 투숙객과 문화, 직업, 인생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반려견이 이번 주에 많이 아팠는데 지금 좀 나아져 잠시 여행을 왔다고, 근데 내 마음은 온통 그 생각뿐이라고 말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사랑이가 안 좋다고, 늦은 밤이라 걱정되지만 집으로 오는 게 좋겠다는 소식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같이 막걸리를 마시려고 잔을 채운 직후였다. 늦게나마 바로 짐 싸서 출발했다. 슬픈 예감이 에워싸 덜덜 떨리는 몸을 추스르고 자꾸 눈물로 흐려지는 눈가를 훔치며 달렸다. 왜 예전에 강화도로 귀향을 보냈는지 조금 알 것처럼 집으로 가는 길은 아득하게 멀었다. 그렇게 사랑이는 내가 도착하기 약 30분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미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다시 살아서 볼 수 없다는 속상함 등이 대성통곡으로 터져 나왔다. 고맙게도 아직 몸에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정말 컸다. 끝으로 기운을 내서 했던 행동 중 하나가 저녁 시간 텅 빈 내 방을 한참 동안 멍하니 보는 거였다고 한다. 왠지 나를 기다렸을 것 같아 정말 속상했다. 남은 체온을 나누고 눈을 뜨고 있기에 감겨 줬다. 우연일지 모르나 그전에 부모님이 감겨주려고 했을 땐 안 감았는데 내가 오기 직전에 도착한 동생과 나를 보고 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랑이가 곧 가더라도 오늘은 버텨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뒤늦게 깨달으며 짧은 여행을 회한으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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