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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여름휴가_2일차(1)_신안_섬티아고 순례길_송공여객선터미널·기점소악도(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진섬)·순례자의 섬 게스트하우스&카페
    기행/국내 2021. 9. 22. 00:47

    6시가 조금 지나 닭 울음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덕분에 피곤함을 이기고 일어났다. 괜히 밖에 나가 집을 돌아보고 컵라면과 초콜릿 음료로 호화로운 아침 식사를 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신안을 둘러볼 예정이다. 총 1,025개의 섬으로 이뤄진 행정구역인데 나무와 풀이 없는 섬 21개를 제외하고 1,004의 섬, 천사의 섬으로 브랜딩하고 있는 모양이다. 염전 노예 사건이 널리 알려졌지만 나에겐 명절에 찾는 평화롭고 고즈넉한 시골이다. 횟수로는 그 어느 타향보다 많이 찾은 곳이건만 부끄럽게도 이곳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다. 연륙교로 많은 섬들이 연결되어 이번 기회에 보다 많은 곳들을 직접 겪어보기로 했다.

    대기점도로 가기 위해 송공여객선터미널에 갔다. 터미널 직원 분들이 한결같이 친절하셔 아침부터 유쾌했다. 이와 별개로 불안한 마음에 일찍 도착해 1시간 정도 기다린 뒤에야 09:30 배를 탈 수 있었다.

    추억의 페리를 타고 섬에 도착해 대기점도 선착장을 기점으로 일명 신안 섬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다. 상당히 무더운 날씨였는데 호기롭게 옥수수수염차 한 병 들고 왔다. 나 빼고 다른 분들은 다 차를 가지고 오셨더라...*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는 섬과 섬을 연결하는 노두길 혹은 노둣길로 이어져 있다. 썰물 때에는 대기점도, 소기점도와 소악도, 진섬 총 네 개의 섬을 단번에 걸을 수 있다. 참고로 병풍도란 섬은 노두길로는 이어져 있지만 순례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순례길에는 11명의 작가가 만든 12개의 기도처가 있다. 12사도 예배당이란 이름처럼 가톨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축물이지만 종교를 가리지 않고 각자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작은 성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각 예배당에는 번호와 이름이 매겨져 있는데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그리스 산토리니를 떠올리게 하는 1번 베드로의 집을 마주했다. 순례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종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막상 도착하니 날이 생각보다 훨씬 쨍하고 더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원래 이용할 생각이던 전기자전거 대여를 안 한다는 안내를 뒤늦게 봤다. 순간 머리가 띵했지만 어쩌겠나 이곳은 섬이고 나에겐 길이 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걸음을 뗐다. 내심 두 바퀴로 편하게 관광하고 싶은 마음과 두 다리로 순례를 곱씹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결국 한나절의 도보 순례자가 되었다.

    머지 않은 곳에 위치한 2번 안드레아의 집은 병풍도로 향하는 노두길 근처에 있다. 집 앞과 지붕 위에 고양이 조각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대기점도 내에 고양이들이 많은 것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군데군데 보이는 노두길은 원래 갯벌 위에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요즘은 이렇게 콘크리트로 만들어 차도 다닐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 소금보다 짠 땀방울을 훔쳤을 염전도 보인다.

    3번 야고보의 집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로마식 기둥을 입구 양쪽에 세워 안정감이 돋보이게 했다고 한다.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볼 수 있었다.

    섬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섬에는 어민 못지않게 많은 농민들이 살아간다. 한낮의 열기로 어지러운 가운데 덕분에 늦여름의 정취를 느껴본다.

    날이 더운데 짧지 않은 거리를 걷다 보니 야트막한 언덕길이 유독 멀게 보인다.

    길을 잘못 들어 5번 필립의 집을 먼저 보고 4번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건축형태를 사용했고 지붕 위 물고기 모형으로 이곳이 어촌임을 드러냈다고 한다.

    꽤나 돌아가 만난 4번 요한의 집은 창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다는데 아쉽게도 문이 잠겨있었다. 예배당 입구의 염소 조각이 독특하다.

    다시 5번 필립의 집을 지나 노두길을 건너 소기점도로 향했다.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은 공사 중이라고 쓰여있었지만 이미 완성된 작품으로 보였다. 호수 위의 교회로 물이 가득한 호수에 그림처럼 떠 있는 건축미술이라고 한다. 목조와 통유리 소재로 자연과 어우러지도록 만들었다는데 그 덕인지 보는 각도마다 다른 작품처럼 보였다.

    작가들의 작업실이라고 표시된 공간도 지나갔다.

    7번 토마스의 집은 흰색에 파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건물로 1번 베드로의 집과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보다 각진 형태를 하고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순례 중간 즈음 소기점도에 위치한 순례자의 섬 게스트하우스&카페에서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여기도 당분간 휴업이라고 한다. 미리 확인하지 못한 내 잘못이겠지만 옥수수수염차 한 병 들고 땡볕을 버티던 도보 여행자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주린 배와 갈증을 미지근한 음료로 달랬다.

    8번 마태오의 집은 갯벌 위에 세워졌는데 러시아 정교회를 닮은 지붕이 독특하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때 봤던 해안가에 위치한 사원들을 떠올리게 했다.

    염전, 민박 등을 지나쳤지만 왜인지 인적이 참 드물다.

    9번 작은 야고보의 집은 프랑스 남동부 풍으로 지은 건축물인데 동양의 곡선에 서양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더했다고 한다.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창이 묘하게 어울린다. 대부분의 예배당이 잠기어 있었는데 열려 있어 기쁜 마음으로 들어가 잠시 기도를 했다.

    진섬으로 건너가 만난 10번 유다 다대오의 집은 뾰족한 지붕과 부드러운 창문이 조화로운 예배당이라고 한다.

    11번 시몬의 집은 뚫려있는 공간으로 바다가 보여 개방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집이 아니라 문 같기도 했다.

    마지막 예배당인 12번 가롯 유다의 집은 모래해변을 건너야 갈 수 있는 딴섬이란 이름의 작은 섬에 있다. 뾰족한 지붕, 둥근 첨탑과 붉은 벽돌로 몽생미셸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지었다고 한다. 순례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종이 이곳에도 있었다.

    약 12km를 걸어 이곳까지 왔다. 홀로 서있는 마지막 예배당에서 함께 고독을 씹었다.

    왠지 모기가 많아 보이는 대나무숲을 지나 소악도 선착장으로 향했다.

    뒤늦게 나를 살피니 그늘도 거의 없었던 터라 피부가 벌겋게 익었다. 상기된 얼굴로 선착장으로 가다 아스팔트 위에 밟힌 채로 바싹 마른 게를 봤다. 왠지 남 같지 않아 더 마음이 갔다. 서로의 처지를 헤아리면 위선일 수 있으나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반대편 선착장에 취치한 자전거대여소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하여 당분간 운영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마주했다. 뭔가 수미상관형 순례라고 생각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민박에서 운영하는 분식점 겸 카페가 있어 반가웠는데 역시나 코로나19로 인해서 휴업 중이었다. 왠지 순례자가 아닌 방랑자가 된 기분이다.

    본의 아니게 원 없이 걷고 강제적으로 혹서훈련+순례 비슷한 걸 경험하고 견뎌내 뿌듯했다. 2시 25분에 온다던 배는 2시 40분이 다 되어서야 왔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선착장 구조물이 만든 작은 그림자 아래서 휴식을 취하다 갑자기 코피가 터졌다. 당황스럽고 황당했지만 한편으론 납득이 갔다. 생각보다 코피가 꽤 나와 매번 여행을 빙자해 혹사시키는 내 육체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배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가 정신 차리니 어느새 송공여객선터미널이다. 차에 돌아와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살았다'였다. 30대가 되어서도 정말 한결같이 사서 고생하는 나의 여행기에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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