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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내일로_1일차(1)_광주_망월묘지공원·국립5·18민주묘지·송정떡갈비
    기행/국내 2020. 12. 14. 23:02

    급작스러운 팀 이동 후 정신없이 달렸던 한 해였다. 미처 겪어보지 못한 슬픔과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보고 들으며 마음속에 우울감과 무력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20대 후반으로서 이런저런 고민도 자라나던 차에 2017년 동계 내일로 이용 가능 연령이 만 29세 이하로 확장된 걸 알게 됐다. 업무가 바뀌고 전국 곳곳을 누볐지만 매번 일을 마치고 거의 바로 돌아와 아쉬움이 컸기에 늦깎이 내일러가 되었다. 크리스마스에 청춘행 내일로 열차에 탑승했다. 그 시작은 국내 출장으로 자주 왔던 용산역이었다.

    이번엔 출장 말고 여행!

    크리스마스 당일이라 그런지 역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아침 9:10 용산발 여수행 기차 타고 우선 서대전역으로 향했다.

    기차계의 클래식

    오랜만에 타보는 무궁화호 그리고 처음 타보는 식당칸이 불편함보단 설렘으로 다가왔다. 기차 여행 참 매력 있다고 생각하며 서대전역에 내렸다.

    혹시 내일러세요...?

    내일로는 최초 발권 시 발권역을 선정할 수 있다. 발권역마다 혜택이 다른데, 나는 추천글을 보고 서대전역을 골랐다. 발권역 혜택을 받기 위해 굳이 내렸는데, 이미 주요 물품이 조기 소진되었다고 하더라...* 홈페이지에 물품 조기 소진에 대한 별도의 안내가 없어 당황스러웠다. 아마 몇몇 상품의 물량이 더 한정적인 것 같았다. 나에겐 딱히 쓸모없는 물품만 받고 참고했던 추천글에 물량이 소진됐다는 댓글을 달았다. 그랬더니 즉각적으로 원글 작성자가 직원이 부탁해서 쓴 거라고 댓글 달았다가, 이내 원글을 지우고 나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더라. 뭐지...? 엄청 불쾌했지만 이제 겨우 여행의 시작이기에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광주로 향했다.

    부들부들

    기다렸다가 광주로 향하는 ITX-새마을호를 탔다. 내가 기억하는 새마을호의 모습보다 더 멋있는 외관이었다!

    새마을호... 낯설다...

    실내도 굉장히 깔끔했다. 사람이 거의 없어 앉아서 갔다.

    내일로로 전세낸 객차

    사실상 첫 목적지인 광주에 도착하니 어느새 오후 2시가 다 됐다. 

    눈으로 뒤덮인 설산이 장관이다. 아마도 무등산이겠지...?

    한국의 킬리만자로, 무등산

    국립5.18민주묘지로 가는 버스 번호는 518이다. 무심한 나와는 다르게 버스마저 그날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배가 고팠지만 배차가 긴 518버스가 바로 와서 그냥 탔다.

    괜히 뭉클했던 버스

    버스로 광주 시내 투어를 하고 시 외곽에 다다랐다. 멍 때리다 딱 한 정거장 지나쳐서 내렸는데 도보로 20분 걸렸다. 외지고 좁은 길에 차들이 엄청 쌩쌩 달렸다. 로드킬 당할까 봐 무서울 정도였다.

    살려주세요... 사람이 걷고 있어요...

    이내 묘지가 보인다. 알고 보니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망월묘지공원과 국립5·18민주묘지가 함께 위치해 있었다. 원래부터 망월묘지공원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사망한 분들이 많이 묻혔었다고 한다. 이후에 국립5·18민주묘지가 조성되며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는 대부분 그리로 이장했다고 한다.

    먼저 둘러본 망월묘지공원에는 가묘로 민주화 운동 열사들을 기리는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도 조성되어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바람에 돌돌 말린 태극기와 가묘가 묘하게 어우러졌다.

    RIP...!

    민족민주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5·18정신계승 민족민주열사 유영봉안소도 있었다.

    한 바퀴 둘러보고 맞은편 국립5·18민주묘지로 향했다. 광주는 그 이름부터 빛고을일 정도로 빛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겨울 하늘 아래 햇빛이 참 밝았다. 왜인지 그 남녘의 볕이 고맙고도 죄송하게 느껴졌다.

    5·18 추모관에서는 다양한 전시로 자연스레 5·18을 기억하고 기릴 수 있었다. 캄보디아 투올슬랭 대학살 박물관, 폴란드 아우슈비츠, 르완다 키갈리 제노사이드 메모리얼에서 느꼈던 인간이 저지른 일에 대한 혐오와 소름도 느꼈다.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용기 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동시에 이유도 모르고 쓰러져간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어떻게 살아야 그 슬픔을 감히 기릴 수 있을까. 또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역사를 통해 얻은 배움으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선을 꼭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어떤 제도나 사회보다 중요한 건 결국 개별적 존재의 존엄성을 지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한 바퀴 둘러보다 마주한 추모탑이 눈에 익다. 높이가 40m에 이르러 굉장히 컸다. 손으로 가운데 부활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감싸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한 번 더 묵념으로 추모하고 518버스의 배차를 확인하니 14분 전! 급히 나왔는데 나오니 22분으로 늘더라...* 결국엔 그것보단 빨리 왔다(?). 혼란스러운 광주버스를 타고 문화전당역으로 향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시간이 애매해 광주 지하철 타고 광주송정역으로 향했다.

    원래 목포로 넘어가 할머니를 뵈러 갈까 했다. 하지만 10분 차이로 목포행 무궁화호 열차를 놓쳤다. 할머니 드리려고 용돈까지 뽑아서 가져왔는데 나도 참 어지간하다...* 살짝 멘붕이 왔지만 일단 여기까지 온 김에 근처에 있는 송정떡갈비로 가서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떡갈비를 시키니 갈비탕을 주는 엄청난 한상을 먹으며 기운을 차렸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오늘 기차가 남은 순천으로 향했다. 기차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게 내일로의 매력 아니던가...* 갈림길은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지만 사실 많은 순간 선택권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같이 봉사단 했던 종훈이 형이 순천에서 일하고 계셔서 미리 연락드렸다. 순천역에 도착해 근처 카페에 있던 형을 만나 형집에서 신세를 졌다.

    형은 취직한지 얼마 안 됐고 나는 팀을 옮기고 얼마 되지 않을 때라 각자 회사에서 고민과 어려움이 많았다. 끊길 듯 계속 이어지는 대화를 나누다 꽤나 늦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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