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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암미술관_한 점 하늘_김환기
    문화생활/전시 2023. 6. 18. 23:05

    마리골드가 나오는 꿈을 꾼 날,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 꽃말을 생각하며 어머니와 함께 호암미술관에 다녀왔다. 감기 기운을 내게 옮길까 안 가시려던 걸 좋아하실 거 같아 설득했다. 미술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삼성그룹 창업주인 故 호암 이병철 선생이 30여 년에 걸쳐 수집한 미술품 1천2백여 점을 바탕으로 1982년 개관한 한국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다. 서울랜드 근처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처럼 에버랜드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고근대 미술 중심의 전시를 했었는데, 리노베이션 후 첫 전시로 김환기 회고전 <한 점 하늘_김환기>가 열렸다. 이번 전시를 필두로 국내외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기획전과 특별전을 열 예정이라고 한다. 김환기 화백은 추앙하는 예술가 중 한 분이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갔다. 특이하게 입차 시 표를 확인하고 미술관 본관에서는 별도의 검표가 없었다.

    전시는 작가의 40년 예술 여정을 구상과 추상의 이분법이 아니라 단절 없는 하나의 세계로 보고자 한 접근부터 좋았다. 덕분에 유화, 드로잉, 스케치 등 총 120여 점의 작품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거장의 자취를 연속적으로 좇을 수 있었다.

    달, 달 항아리, 산 등 익숙한 오브제부터 부처, 작업실, 피난 등 다양한 주제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그려낸 역작들이 감동적이었다.

    이건희 컬렉션에서 봤던 여인들과 항아리도 재회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보니 왠지 감회가 새롭다.

    정말 작품 하나하나 울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가 쓴 글과 사상도 정말 존경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부분도 많이 신경 쓴 게 느껴졌다.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자화상, 편지 같은 것들도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다. 선생은 신안군 안좌도 태생인데 신안군 압해도에서 자란 아버지의 아들인 나는 묘한 연대감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탁월한 창작가와 어설픈 나 사이에 억지스러운 공감대를 찾는 건 짝사랑 마니아의 오랜 습관이긴 하다.

    2층과 1층에 각각 전시 공간이 있다.

    생전 마지막 작품과 일기까지 보고 나왔다. 죽음이 임박해서도 끝까지 자신을 불사른 예술혼이 정말 경외스럽다.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고.'라는 문장은 왠지 울컥하게 한다. 그야말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다간 생이 아닐까 싶다.

    전시와 무료 오디오 모두 알차 관람하는데 1시간 20분쯤 걸렸다. 엽서를 사고 싶었는데 굿즈는 생각보다 종류가 적었다.

    호암미술관은 2만 평에 이르는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한국 전통정원 희원을 20분 정도 걸으며 무더위가 임박한 초여름의 산책을 즐겼다.

    프랑스 근대 조각의 거장 부르델의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부르델 정원은 공사 중이라 다음을 기약했다. 이 정도 아쉬움은 좋은 원동력이 된다. 그렇게 근처 카페에 들렀다 집으로 오는 길에 어머니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노래를 젊을 때 즐겨 들으셨대서 같이 들었다. 유심초, 산울림 등 어머니가 젊은 시절 좋아하셨던 가수들을 처음으로 알았다. 어머니는 나보다 어릴 때 나를 낳았지만 나는 그보다 나이가 더 먹고도 여전히 어린 것 같다. 미처 짝을 찾지 못한 덕에 일상의 여유를 부모님과 조금이나마 더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나이가 먹을수록 조금씩 수더분해지는 걸 느낀다. 내일의 꿈을 위해 내달리는 것 못지않게 오늘의 행복에 이르는 것도 어렵고 값지다는 걸 안다. 이전엔 갈증을 일으키던 일기에 불과한 글이나, 짝사랑에 그치는 마음 같은 것들이 이제는 자의적인 자족으로 갈무리된다. 김환기 화백의 회고전을 찾아 다양한 걸작을 통해 익숙한 오브제부터 낯선 모티프까지 두루 감상할 수 있었다. 추상과 구상을 초월해 고유한 예술에 이른 그의 우주를 유영하며 문득 그 모든 활동은 어쩌면 일종의 일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주제넘은 생각을 했다. 거장이 준 감동과 영감 덕분에 일상에 매몰되어 호흡 곤란을 겪던 나의 미약한 예술혼이 '환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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