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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밤중에 잠깨어
    문화생활/책 2021. 1. 10. 21:57

    (2014년에 쓴 글)

     

    다산 정약용.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 목민심서와 거중기 등 수많은 업적들. 다산 정약용 선생을 떠올리면 흔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상들이다. 조선 최고의 수재 중 한 명인 정약용 선생은 이처럼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또 그를 떠올리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신유사화와 긴 유배이다. 다산 정약용이 아닌 인간 정약용은 참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막연하게나마 참 고달픈 삶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런 삶을 이겨내고 어려움조차 승화시킨 그의 삶을 동경했다. 아직 잘은 모르지만 그의 이념, 삶 많은 것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 이렇게 이 책을 만났다. 그리고 뜻밖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그의 삶으로부터.

     

    사실 나는 지금 4학년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처럼 한밤중에 잠이 깨진 않지만 나도 인생의 갈림길 위에서 이런저런 갈등을 겪고 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막상 이 갈림길 위에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듯한, 무방비 상태인 기분이다. 하지만 정계에서 물러나 이제 좀 여유롭게 살아보고자 했는데 정치적 탄압으로 귀향을 가야 했던 누군가만큼 무방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이 상황과 시기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정약용 선생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그냥 날벼락이 아니라 형제 중 한 명이 죽고 그나마 또 다른 하나는 멀디먼 섬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날벼락. 그의 유배 초기이자 이 책의 초반부이기도 한 ‘장기 유배기’의 한시에선 그런 날벼락에 대한 다산의 마음이 드러난다. 시쳇말로 ‘멘붕’이라고 할까. 그는 허탈해하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때때로 자기를 등진 벼슬아치들을 비하하며 더 많은 순간 자신을 비하한다. 사실 이건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보이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대한 방어기제다. 화살을 타인이나 본인에게 돌림으로써 그 상황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최근엔 나도 이런 모습을 자주 보였던 것 같다. 개인적인 여러 일들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겹친 상태에서 작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발목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얘기를 들었을 때 그런 모습은 더 심해졌다.

     

    하지만 다산은 거기서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는 소름 끼칠 정도로 빠르게 마음을 가다듬고 오히려 그런 상황으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한다. 바다와 같은 마음을 가지겠다고 다짐을 하며 원망을 가라앉히고 오히려 자기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자기 마음이 폭풍과 같을 때 그 마음을 바로 보는 건 참 힘들다. 그러나 다산을 그 어려운 길을 택했고 사실 그건 제일 본인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그는 비합리적인 마음들을 덜어내고 승화시켜 많은 훌륭한 저서를 남긴다. 이 책엔 그의 저술활동들이 담겨있진 않지만 그런 그의 승화과정이 참 절절히 남아있다. 사실 책을 보는 내내 참 부끄러웠다. 내가 붙들고 있던 내 고민들이 너무 이기적이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러며 한편으로는 가족, 고향 그리고 형제에 대한 다산의 그리움이 너무 슬펐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때때로 왜 이리도 잔인한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들 때 다산은 자신의 한시를 통해 나지막이 속삭였다. ‘권력도 세상의 그 무엇도 결국은 다 부질없더구나, 무엇이 정말 중요할까?’ 나는 이 책으로부터 그런 질문과 위로를 동시에 받았다. 다행히 나는 아직 갈림길 위에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문득 故 유재하 씨의 노래가 하나 생각난다.

    “이제 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 가리“

     

    한밤중에 잠깨어
    국내도서
    저자 : 정약용
    출판 : 문학동네 201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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