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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즈메의 문단속 (すずめの戸締まり, Suzume), 2022
    문화생활/영화 2023. 3. 15. 23:49
    2023년 3월, 마침내 스즈메의 문단속이 개봉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세계관과 이야기를 사랑하기에 정말 오랫동안 고대한 영화였다. 기다리는 동안 많은 일을 겪을 정도로 기다렸다...* 관람하러 가기 전엔 노인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뵙고 왔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눈에 띄게 기력을 잃으신 모습을 보며 감히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견의 빈자리도 여전했기에 폐허처럼 헛헛한 가슴으로 홀로 영화관을 찾았다. 

    규슈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던 소녀 '이와토 스즈메'는 우연 혹은 필연에 의해 재난으로 이어지는 문을 닫는 '무나카타 소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고양이의 모습을 한 '다이진'과 잇닿아 그들은 동행하며 각자의 여행을 시작한다. 역시 신카이 마코토 감독에게 기대했던 아름다운 작화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처음부터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이전 작품과 비슷하게 개연성 부분에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그들과 여정을 함께하며 충분히 행복했다.

    '문'이라는 매체는 여느냐 닫느냐에 따라 잇기도 끊기도 한다. 죽음도 시간도, 심지어 마음가짐도 모두 일종의 문이 될 수 있다. 어렸을 땐 문 뒤에 뭐가 있는지 두렵기보단 호기심이 강했던 것 같은데 세파에 풍화되며 어느덧 주된 마음이 반대가 되었다. 간절한 두드림을 저버리고 끝끝내 열리지 않던 타인의 마음 앞에 상처받고, 반대로 고마운 누군가 다가오면 방어 기제의 단단함을 깨달으며 문조차 찾기 어렵다. 그래서 결과와는 별개로 벌컥벌컥 문을 여는, 낯선 이에게 달려가 기꺼이 맞대던 소녀의 순수한 용기가 정말 멋지고 부러웠다.  

    서로가 밀접할수록 관점과 시점에 따라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르게 남을 수 있다. 예전엔 관계에 따라 더 달라졌던 것 같은데 점점 그 앞에 이해라는 단어가 붙는다. 관계보다 앞서는 이해관계가 이해를 방해하기도 한다. 문단속을 매개로 스즈메, 소타 그리고 다이진이 처한 개별적인 상황을 헤아리며 묘하게 잃어버린 인류애가 조금은 회복됐다.

    이번 작품은 규슈, 시코쿠, 고베, 도쿄로 장소를 이동하는 로드무비이기도 하다. 간접적으로나마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호의를 나누고, 각 고장이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어 참 좋았다. 작품에도 담겼듯 많은 땅과  위의 사람들은 가슴 아픈 재난과 재해를 비롯해 여러 슬픔을 공유하고 간직한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우리는 진정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지진이라는 소재가 계속 나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동대지진의 서글픔도 떠올랐다. 억울하게 바스러진 이름들을 위해서 역사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르침을 잊지 않고, 인간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고 다짐한다...!

    작년 내 삶의 화두 중 하나는 '조연'이었다. 다른 이들의 인생에서 조연에 그치며 내 삶에서조차 소외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꿀 수 없이 단 한 명이라는 것과 타인의 서사를 돕는 조연이 되는 건 드물고 값진 일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이번 작품에서도 스즈메의 이모인 이와토 타마키와 소타의 친구인 세리자와 토모야 등 다양한 조연이 등장한다. 각자 삶의 주체인 매력적인 이름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갑고 고마웠다.

    또래에 비해 순수를 좇거나 이상을 간직한 채로 애매하게 나이가 들어가는 어른이는 스스로 괴리감을 느끼는 순간이 점점 잦아진다. 물론 내가 유별나게 착하거나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이에 걸맞은 정도로는 약아지고 불순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곤 한다. 삼십 대 중반이 되어도 별 게 다 어렵다. 어쩌면 그게 아직 가슴속 살아있는 순수의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덕에 뜨겁게 울컥하며 얼어붙었던 응어리가 따뜻하게 녹는 걸 느꼈다. 울다 지쳐 홀로 잠들던 소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문을 여닫는 내일이 되었다. 울보였던 나 또한 바라던 미래는 아닐지언정 이미 한 소년의 미래다. 신카이 마코토의 이야기에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동경뿐 아니라 다 커서 지닌 동심과 순결을 긍정할 수 있게 돕는 의지와 의미가 담겨 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지질한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한 번 더 나를 수용하고 내 안팎의 봄을 긍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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